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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센 세게” 말 거니 … 에어컨이 “강풍 설정” 대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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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LG전자 창원 에어컨연구소 신제품개발팀은 “고객과 교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우수창 책임연구원, 송유진 연구원, 박수준 선임연구원, 손대근 연구원. [사진 LG전자]

지난 18일 경남 창원에 소재한 LG전자의 에어컨연구소. 이곳에는 멀리서도 보이는 100m 높이의 굴뚝 모양 타워가 있다. 타워 전면에는 LG전자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타워의 용도에 대해 지역 사람들은 ‘안에서 몰래 국가 기밀 병기를 만든다더라’ ‘꽃을 키운다더라’며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았지만 LG전자 관계자는 ‘LG전자만의 에어컨 신뢰성’을 만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고층 빌딩이 많아지면서 에어컨 실외기와 본체가 멀리 떨어져 위치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도 성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험하는 공조 테스트 센터라는 것이다.

 이렇듯 LG의 에어컨연구소는 매년 1월 신제품을 선보이는 핵심 개발 연구소다. 지난 1일 LG전자가 공개한 2013년형 에어컨 신제품 ‘챔피언 스타일’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음성 인식 기능인 ‘보이스온’ 기능이 탑재됐다. 이 제품은 우수창(41) 책임연구원, 박수준(35) 선임연구원, 손대근(29) 연구원, 송유진(28) 연구원 등 ‘신제품 프로젝트 개발팀’의 작품이다. 밤낮으로 고민한 흔적이 에어컨 곳곳에 역력하다.

 보이스온 기능을 이용하면 최대 5m 떨어진 거리에서도 리모컨 없이 음성만으로 전원을 켜고 온도와 바람세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이 기능을 에어컨에 탑재하기 위해 손대근 연구원은 1년 내내 에어컨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에어컨을 ‘이 친구’라고 표현했다. 손 연구원은 “1년 내내 출근해서 퇴근까지 이 친구에게 말을 걸고 드라마도 보여줬다”며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와 슈퍼스타K 로이킴이 부르는 ‘먼지가 되어’에 유독 반응을 많이 하며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손 연구원은 음성 인식 기술에 대해 “기본적으로 에어컨은 바람을 만들어내는 곳이라 약간의 소음이 발생한다. 또 집 안에는 TV도 있고 라디오도 있는데,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에어컨이 사람 말만 정확히 알아듣고 명령을 실행하도록 하는 게 가장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손 연구원은 강원·영남·호남 등 지역과 나이·성별을 고려한 평가단 700명을 직접 찾아가 ‘바람’ ‘정지’ ‘휘센 안녕’ 등 특정 명령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에어컨에 들려줬다. 각 지역의 사투리 억양을 쓰더라도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 연구원은 “처음에 정지명령을 ‘휘센 그만’이라고 저장해 뒀더니 경상도 지방에선 소비자들이 ‘휘센 고만’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 ‘휘센 정지’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개발팀은 스마트폰과 교감할 수 있는 NFC(근거리 무선통신)를 적용하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외부에서 에어컨을 원격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송유진 연구원은 “지난해엔 버튼 위주로 만들었던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을 수정했는데, 이런 경우가 스무 번을 넘는다”며 “지금도 계속 애플리케이션 버그를 테스트하기 위해 지문이 닳도록 스마트폰을 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제품 개발팀장인 우수창 책임연구원은 “매년 삼성전자와 에어컨 내수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니 성능 개발은 당연하고 디자인과 스마트 기술을 접목해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이들에게는 매년 이전 모델보다 좋은 에어컨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다. 신제품 냉방 성능을 담당하는 박수준 선임연구원은 올해 역시 머리를 학대한 결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상하좌우 4면에서 바람이 나오는 4D 입체냉방을 개발했다. 그는 “내가 설계한 제품들이 생산에 들어가 공장에서 몇백 대씩 나오는 모습을 볼 때 시집가는 딸을 보는 듯한 흐뭇함이 든다”며 “아직 시판을 못한 태양광 에어컨의 양산 기술을 개발하는 게 가까운 미래에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말했다.

창원=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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