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한국영화산업'

중앙일보

입력

한국영화 돌풍의 진앙지인 부산국제영화제의 현장에서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세를 점검하고 장래를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돼 주목을모았다.

14일 오후 부산 코모도호텔 충무홀에서 개최된 '떠오르는 한국영화산업' 주제의세미나에서는 영화제작자, 배급업자, 투자자 등이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영화거품론과 흥행 양극화 현상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사회를 맡은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을 비롯해 김동주코리아픽처스 대표, 석동준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배급팀장, 심재명 명필름 대표,오동진 필름2.0 취재부장,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 , 최용배 시네마서비스 배급이사, 하성근 KTB엔터테인먼트 이사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발언 요지를 간추린 것이다.

▲김혜준 = 10월 말 현재 올해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을 잠정 집계하면 43.3%에이른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연말까지 영화관객은 8천만명에 이르러 국민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예년의 1.1회에서 1.7회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영화의 성장요인과 장래 전망을 말해달라.

▲오동진 = 한국영화계가 수치상으로 엄청난 성장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비관적인 시선이 교차되고 있다. 가요가 팝을 눌렀으나 10대 위주로 축소된 음반시장처럼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비관론에 동의하는 것은아니지만 귀기울일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다. 흥행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성공하는 영화 편수는 정작 많지 않다. 그러나 영화계에 고급인력이 유입되고있고 상업영화 제작자들도 전체 영화계의 지형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계는 분명히 희망적이다.

▲최용배 = 어떤 우려가 제기된다 해도 영화산업 자체가 발전한 것은 부인할 수없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국영화를 배급하는 입장에서는 미국영화와의 경쟁이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비교적 개봉 시기를 자유롭게 정하고 있고 오히려 다른 한국영화를 의식하게 됐다. 내 기억으로는 여름시장에서 미국영화를 누른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제 겨우 처음으로 한국영화가 우위를 갖게 됐는데 불안을제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 아닌가. 지금의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석동준 = 관객의 한국영화 선호도가 크게 높아져 투자금액을 얼마든지 회수할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고 많은 영화 펀드가 설립돼 공동투자도 용이해졌다. 그러나안정된 수익기반을 갖추고 있는 곳이 없는데다가 영화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자금이많이 몰리고 있어 불안감을 던져준다. 올해 한국영화 관객을 4천만으로 잡아도 시장규모가 1천200억원인데 펀드 규모는 2천억원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소수의 시나리오와 배우, 제작사를 놓고 다수의 투자자가 출혈경쟁하는 상황이다.

▲하성근 = 2천억원 정도의 가용자금이면 30억원짜리 영화를 60편 만들 수 있어수요와 공급은 거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본다. 해외 판매비율을 높이고 관객의 영화관람 횟수를 늘리면 얼마든지 시장을 키울 수 있다. 펀드의 자금은 회수기간이 짧아야 하는데 대형영화의 경우 2년 뒤에나 회수되는 것이 문제다. 이를 1년 이내로줄이면 영화계에 1조원의 돈이 돌게 된다. 회수기간이 짧은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투자를 골고루 배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김동주 = 한국영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있는 한국영화가많이 나온 동시에 할리우드가 침체하고 홍콩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올해의기록적인 성장을 예측하지 못했듯이 지금 향후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시기상조인지 모른다. 한국영화의 시장규모는 세계 6∼7위에 해당하는데 그에 걸맞는 브랜드나스타가 없다

▲심재명 = 93년 16%대에 머물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해마다 17% 정도의 성장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화가 안정궤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수한 인력과 풍부한 자본, 정책적 뒷받침, 기술력 등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문제는 시장의 90%를 30편 안팎의 큰 영화가 독식하는 현상이다. 영화의 다양성이 확보돼야 안정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저예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세제혜택을 주거나 예산 규모에 따라 상영일수를 보장하는 등의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유인택 = 투자 위험을 줄이고 편수를 늘리려면 우선 평균 제작비 규모를 줄여야 한다. 연기자와 스태프 개런티의 일정부분을 투자로 전환하는 동시에 효율적인마케팅 시스템을 도입하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극장과의 배분율 개선, 입장료 자율화, 해외 마케팅 강화, TV 및 비디오의 홀드백(극장 상영 후 유예기간) 적정기간 유지 등도 필요하다.

▲김혜준 = 지금 영화계에서는 흥행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험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하성근 = 저예산투자조합의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고 있으나 처음부터 여기에참여하려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150억∼200억원만 확보되면 1년에 질좋은 저예산 영화를 10여편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든다 해도 상영할 곳이 없으면 소용없다. 저예산 전용관이 전국적으로 20∼30개가 확보돼야 한다.

▲최용배 = 이상적으로는 저예산 전문배급사가 등장해야 하며 전용관과 이를 묶는 전국적 체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요성에는 동의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매우어렵다. 저예산 영화의 관객 동원력으로 볼 때 전용관에 공급할 물량도 부족하다.

시작단계에서는 멀티플렉스 가운데 몇개 스크린을 조직화하는 동시에 배급사가 부담을 나눠지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일단 이해관계를 조정할 협의체를 구성하고 당국의 지원도 받는 방식이 좋겠다.(부산=연합뉴스) 이희용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