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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금호'엔 왜 호남출신 많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음 중 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①정치흥정 ②괘씸죄 ③정경유착 ④무질서 ⑤부정선거 ⑥무역적자 ⑦국민정서 ⑧주가조작 ⑨정쟁(政爭) ⑩지역감정.

<답> 은 ⑩지역감정입니다.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카인즈(http://www.kinds.or.kr)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언론 보도 기사들을 주제어별로 검색할 수 있어 기자들에게 유용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특정 단어를 입력하면 그 단어가 들어간 기사 목록이 쫘-악 뜨거든요.

*** 사회문제가 된 지역감정

이 사이트에서 10개 종합일간지가 2000년 1월부터 지금까지 보도한 기사 중 위의 단어들이 들어간 기사를 검색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19 ②194 ③469 ④478 ⑤925 ⑥930 ⑦1,093 ⑧2,488 ⑨3,215 ⑩6,347

'정치흥정' 관련 기사는 19건에 불과한 반면 '지역감정' 기사는 무려 6천건 넘게 실렸던 것입니다.

지역감정이란 것이 이렇게 많이 거론될 정도로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론 언론이 이 문제를 자주 제기하는 바람에 오히려 상황이 심해진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놀랐던 것이 있습니다. 부산.광주YMCA가 공동으로 얼마 전 부산.광주 지역 고등학생 5백명씩 1천명을 대상으로 '지역감정에 관한 의식'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역감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절반 이상(광주지역 61.6%, 부산지역 53.6%)의 학생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그렇지 않다'는 대답은 11.8%(광주), 3.8%(부산)뿐이었습니다.

특히 '지역감정이 앞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사라질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32.2%(광주), 22%(부산)에 그쳤습니다.

어떻게 하다 청소년들까지 지역감정을 느끼고, 미래 개선 전망에 대한 확신조차 심어주지 못하게 됐을까요□

사실 지역감정은 3공 때 정치쪽에서 시작됐다지만 이젠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의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피해자 가운데 하나가 금호그룹입니다.

이 그룹은 창업주의 고향이 호남인데, 16개 계열사 사장 가운데 절반이 호남 출신입니다. 이는 금호가 원해서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호남 출신 사장이 많은 까닭은 호남 사람들이 많이 입사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기업에 들어가면 차별받을까 겁이 났었다." 금호의 한 직원이 해준 말입니다.

금호의 입장에선 지역이니 뭐니 따지지 않고 원하는 인재를 뽑고 싶었을 텐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아 고통받았을 것입니다. 덧붙이면, 금호의 오너 형제인 박정구 회장.박삼구 부회장.박찬구 사장은 모두 영남 규수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 회사뿐 아닙니다. 기업이 공장을 세울 때는 인력확보.물류비용.판매망 등을 감안해 입지를 결정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정치권이 지역발전 논리를 앞세워 '그 공장은 우리 지역에'라고 압력을 넣는데 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3金시대가 끝나면 자연히 해소될 것이라고 위안하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세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①여러 선거가 낀 내년을 지역감정의 고리를 끊는 원년으로 삼자.

*** 이력서 본적란 없앴으면

②'지역'이란 말부터 없애자. 그래서 검찰 요직.공기업 사장 중 몇%가 영남 출신이니, 호남 출신이니 하는 분석 자체가 무의미하게 하자. 이력.경력란에 들어가는 '본적' 표기를 하지 말자. 경상.전라 같은 도(道)를 없애고 전국을 30~40개 정도의 시.군으로 재편하는 것도 검토해보자.

③결국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잘 가르치자. 지역감정의 바탕에 깔린 편견.차별의식 등이 국가 통합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혈연.지연 등 소그룹보다 국가공동체를 왜 상위에 둬야 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생각해보게 하자.

민병관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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