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출범 왜 늦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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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카타르)=홍병기 기자]"누가 '판을 깨는 자(Deal Breaker)'가 될 것인가."

뉴라운드 협상이 세계무역기구(WTO)사상 처음으로 회의 일정을 연장하며 타결이냐 결렬이냐를 놓고 긴박하게 돌아갔다. 각국은 뉴라운드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협상을 깬 장본인이라는 지적을 피하려고 눈치를 보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는 '불안한 게임'을 연출했다.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협상이 진통을 겪는 것은 어느 때보다 개발도상국가의 반발이 세졌기 때문이다. 13일(현지 시간)심야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회의 내내 개도국들은 강경한 말투로 선진국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목소리 커진 개도국=환경정책과 무역규제를 연계해야 한다는 유럽연합(EU)에 대해 개도국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인도와 파키스탄.말레이시아가 주도하는 강경 개도국 그룹과 아프리카 최빈국 대표들이 특히 강경했다.

이들은 기존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선진국들이 UR에서 약속한 섬유와 의류쿼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개도국들은 2004년까지 이행하기로 한 쿼터 가운데 아직 집행하지 않은 것을 조기 이행하라고 주문했고, 선진국들은 일정을 바꾸려면 입법조치가 필요하다며 어렵다고 맞섰다.

강경 개도국들은 무역자유화로 교역을 늘릴 수 있다는 UR가 출범한 이후 서비스 시장개방과 지적재산권 보호확대 등 의무만 늘어난 채 이익이 선진국에만 돌아간다며 뉴라운드 출범 자체를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일부 선진국 대표들은 "1국 1표제 원칙에 만장일치제로 운영되는 WTO 회의 운영방식이 계속되는 한 타협보다 주장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며 WTO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이같은 대립은 '신(新)남북문제'로 불릴 정도로 첨예하게 맞붙은 상태다.

◇ 나라간 이해 엇갈린 막판 협상=환경분야와 농업 수출 보조금에서 성과를 못거둔 EU의 움직임이 관건이다 .EU는 판세가 불리하자 13일 밤 유럽 현지에서 긴급 회원국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협상 대책을 협의했는데, 겉으론 강경한 목소리를 자제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EU 안에서도 농업비중이 큰 프랑스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적재산권과 반덤핑 분야에서 많은 회원국을 홀로 상대하며 힘겨운 협상을 벌였다. 그래도 뉴라운드를 출범시키기 위해 반대해온 신약 특허의 예외 인정과 반덤핑 협정 개정협상 실시 등을 양보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관계자는 협상장 주변에서 뉴라운드가 출범해야 하는 이유를 담은 유인물을 돌리기도 했다.

한국은 최대 관심사인 농업.반덤핑 분야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EU.개도국간 갈등을 지켜보며 협상을 점치는 상황이다.

◇ 먹구름 드리워진 협상=이번 회의부터 등장한 '수석대표 전체총회'라는 회의방식은 개도국이 강력 주장한 것이다. 20여개 주요국가들이 모여 현안을 해결해온 '그린룸'회의방식에 대해 많은 개도국들이 "왜 끼리끼리 결정하느냐"며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나라가 너도 나도 발언을 하는 바람에 회의 진행이 늦어지고 대표단들은 지루해하는 모습이다.

개도국들은 농업 등 6개분야만을 그룹별로 나눠 회의에 들어가자 "WTO가 부자나라만의 모임이냐"고 항의하며 보츠와나 등이 주도해 별도 그룹회의를 만들어 개도국 문제를 토론하기도 했다.

환경분야 등에서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13일 새벽부터는 다시 그룹별 회의를 소집해 당사국끼리 막판협상에 들어갔지만 끝내 합의에 실패,회의 일정을 연장하기에 이르렀다.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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