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조 · 유통업체 '특소세 태풍'

중앙일보

입력

특별소비세 인하 방침이 알려진 14일 서울 삼성동의 삼성전자 선릉역 대리점.

한 주일에 두세대씩 나가던 고화질 프로젝션TV의 구입 상담전화가 뚝 끊겼다. 최근 이 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앞으로 내릴 특별소비세만큼 환불해 달라"고 요구하는 전화까지 걸어왔다.

자동차영업소는 "다음달까지 일손을 놓아야 할 판"이라고 걱정했다. 르노삼성자동차 관계자는 "오늘 아침부터 승용차 판매가 전면중단됐고 예약분마저 취소하겠다고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가 빨리 구체적인 방안에 합의해 세율인하를 하루빨리 단행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가전제품=특소세 인하 대상 중 비수기인 에어컨이나 시장규모가 작은 온풍기는 큰 문제가 없으나 프로젝션TV처럼 한대에 4백만~7백만원 하는 고가품은 당장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에어컨은 다음달이면 내년 신제품의 예약판매를 시작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프로젝션TV는 타격이 크다"면서 "이미 공장에서 출하한 물량에 대해서는 업체에 특소세를 환급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LG전자 등 가전업계는 예전처럼 제품값을 미리 내려 팔고 정부가 나중에 환불하는 식의 영업방식을 고려할 수 있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세율인하가 예상대로 되지 않을 경우의 위험부담을 업계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조치로 에어컨은 14%,프로젝션TV는 16% 정도 값이 내릴 것이고,이에 따라 관련 시장이 내년에 20%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 자동차=차 값이 한대에 1억원을 넘는 수입차 판매점들은 고객들의 문의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특소세가 내리면 에쿠스의 경우 3백60만원 정도 값이 떨어지는데 누가 지금 차를 사겠느냐"며 "보통 계약금으로 10만원을 걸기 때문에 쉽사리 해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1998년 특소세 인하 때 법이 통과되기 전에 앞당겨 시행한 뒤 인하분을 환급해준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 백화점=특소세 인하시기가 확정되는 대로 특별전.기획전을 열어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을 세우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번 주부터 바이어들이 해당 업체들과 가격인하폭을 협의할 예정이다.롯데.현대백화점은 에어컨.온풍기.스키용품 등이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특소세 인하 때까지 매출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대책이 마땅치 않아 고심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제조업체와 협의해 미리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그 경우 마진율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 기타 제품=보석.고급시계.모피 등 고가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들은 이번 특소세 인하 조치로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

시계.모피.융단은 2백만원 초과분에 한해 특소세가 인하되는데, 한도액이 너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모피의 경우 올 겨울용이 대부분 특소세를 물고 이미 출고됐기 때문에 특소세 환급문제가 확정되지 않으면 가격을 인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가 보석.시계도 마찬가지다.한 명품브랜드 판매업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실제 판매가격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탈세를 해왔기 때문에 특소세율 인하로 가격을 낮출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가구업계는 이번 인하조치가 일부 호화 수입가구에만 해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국내 가구업체의 제품 중 특소세 인하 한도를 초과하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홍승일.이영열.김준현 기자 hong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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