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크는 한국영화 광고·경품이 일등공신?

중앙일보

입력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유길촌) 가 재미있는 통계를 하나 발표했다.

최근 한국영화의 제작비를 이모저모 따져봤다. 1998년부터 올해(올해는 9월말 기준) 까지 4년간의 제작비를 비교했다. 최근 활기 넘치는 우리 영화계를 반영하듯 편당 평균 총제작비가 15억원(98년) 에서 27억5천만원(2001년) 으로 두 배 가량 늘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우려스럽다. 덩치는 커졌으나 내실은 따라가지 못한 게 드러났다. 같은 기간 순제작비는 40%(12억원→16억8천만원) 상승한 반면 필름 복사비.광고비 등을 합한 마케팅비(P&A비용) 는 3백40%(3억원→10억7천만원) 나 폭증했다. 한국영화의 성장은 마케팅의 승리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우리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미국의 대형 제작사가 모인 미국영화협회(MPAA) 가 발표한 지난해 순제작비와 P&A비용의 비율은 2:1 가량. 반면 올해 우리는 1.6:1로 P&A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보다 훨씬 높다.

할리우드의 '양으로 밀어붙이기''이벤트식 영화'를 경계했던 우리가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영진위 정책연구실의 김현수씨는 "할리우드와 우리를 그대로 비교할 순 없다. 한국영화가 P&A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했다기보다 순제작비를 적게 들인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보아야 할까. 결국 그 지적은 내실보다 외형에 치중하는 우리 영화계의 현실을 입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일단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고 각종 이벤트.경품.광고 등으로 관객을 현혹하려는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영화도 물론 산업이다. 때문에 마케팅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분명 예술이다.무엇보다 컨텐츠가 핵심인 것이다. 게다가 자동차는 결함이 있을 경우 리콜할 수 있지만 영화 관람료는 돌려받을 수 없다.

그만큼 완성도 있는, 즉 관객 만족도가 높은 작품을 내놓아야 할 영화인의 책임이 묵중한 것이다. 이것이 모처럼 꽃피고 있는 한국영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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