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동아시아 경제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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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1 테러사태 이후 세계정치의 지도가 바뀌고 있는 동안, 카타르 도하의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을 전후해 세계경제 지형도 바뀌고 있다. 특히 인구 13억의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합종연횡의 조짐들이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 아세안 끌어당기는 中國

아세안+3 회의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그가 제안해 만들었던 동아시아비전그룹에서 연구한 결과들을 내놓았다. 그 중 하나가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안이었다.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나 유럽연합(EU)에 상응할 만한 지역협력체를 만들자는 야심적인 구상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이와 별도로 지난해 아세안+3 회담에서 제안해 놓았던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한국은 내년에나 가입할 수 있도록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거대한 중국시장을 겨냥하면서 중국의 WTO 가입으로 강화될 경쟁에 대비하고자 했다.

중국은 아세안을 자기들의 영향권으로 더욱 가까이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고 있는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도도 낮출 수 있게 됐다. 동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을 강화해 일본에 대한 견제효과도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가 설립되면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태국.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되는 횡단철도가 연결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문제는 그 경우 남ㆍ북ㆍ러시아간에 거론돼온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구상과 경쟁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반응은 어떠한가. 며칠 전 아사히신문은 17억 인구의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가 동아시아의 주도적인 경제권으로 성장하려 하고 있는데 중국이 아세안을 설득하는 동안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비전 없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농민들의 보호주의 압력에 붙들려 개방을 반대하고, 그래서 아세안 국가들을 설득하지 못해 선수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그냥 앉아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다자주의를 통상외교의 기본으로 삼아왔던 일본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무역 흑자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NAFTA.EU.아세안 등에 둘러싸여 고립돼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이것을 쌍무적인 자유무역지대체결 전략으로 타개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지난 10월에는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이제 멕시코.호주.캐나다.칠레.대만 등과도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을 중심으로 부채살 모양의 경제권 형성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동과 서에서 양 경제대국들이 나름대로의 방략을 펴나가면서 조여오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동서에서 압박해오니 우선 남북부터 통한 다음 그 후에 좌든, 우든 연합을 모색하는 것이 이치일 것이다.

먼저 미ㆍ일ㆍ아세안을 중심으로 하는 남쪽의 해양경제권과 연해주ㆍ동북 3성을 중심으로 하는 북쪽의 대륙경제권을 한반도를 축으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일본과의 투자협정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 동강난 분단 한국을 그대로 놓아둔 채, 지역경제전략을 펴나가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그래서 남북경협이 중요한 것이다.

*** 對北문제 초당적 협력을

요즈음 대북 협력의 '북'이라는 글자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는 게 시중의 정서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에 대한 대책이나 마련해 놓고 그러한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것일까.1세기 전 우리 선조들처럼 온통 국내정쟁에 매몰돼 바깥세상 변하는 것에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도 당 총재직을 사임한 이 시점에서 민족의 대계와 관련된 대북문제에 관해 여야의 협조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나라당과 자민련 연합으로 남북협력기금법을 고쳐 정부의 기금 사용을 일일이 통제하겠다고 한다.

원칙 있는 기금 집행도 중요하지만 이제 막 틔기 시작한 남북 소통의 기운을 살리려면 신축적이고 유연한 기금 운용은 더욱 중요하다. 국민들은 지금 민족의 대계를 위해 협력하는 정치인들의 진정한 용기를 갈망하고 있다.

尹永寬 (서울대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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