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거래·주부 팬클럽의 힘 … 매출 해마다 9%↑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16일 서울 관악구 조원동의 지역 농협 마트인 농산물백화점에서 관악농협주부대학 회원들이 직거래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지역 주민과의 끈끈한 유대는 대기업 마트 3개에 둘러싸여서도 손님을 끌어모으는 지역 마트의 생존 비밀이다. [김도훈 기자]

이 동네마트 참 신기하다. 불과 1㎞ 안팎에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가 포진하고 있는데도 매출이 매년 9% 증가세로 끄떡없다. 심지어 동네 주부들로 구성된 ‘팬클럽’까지 있다. 서울 관악구 조원동의 7300㎡(약 2200평) 규모 대형 마트 ‘농산물백화점’ 얘기다. 1984년부터 자체적으로 농산물 판매를 하던 관악농협(조합장 박준식)이 93년 대형 매장으로 전환한 곳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는 달리 관악구·금천구 등에 사는 900여 명의 관악농협 조합원 900여 명이 이곳의 주인이다.

 “지난번에 사 간 무는 맛이 없었어요.” 지난 15일 저녁 이곳에서 정태월(72)·김인자(55)씨와 함께 장을 보던 주부 제갈무상(61)씨가 스스럼없이 직원에게 말한다. 세 사람은 관악농협이 83년부터 운영하는 3개월 과정 ‘주부대학’ 동문이다. 주부대학 졸업생 3800명이 ‘고향을 사랑하는 주부들의 모임(고주모)’이라는 ‘동문회’를 한다. 고주모 회원들은 장을 보며 실시간으로 시시콜콜한 상품 모니터링이며 근처 마트 가격 정보까지 관학농협에 알려준다. 직접 판촉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배추 파동 때 회원들은 동네 김밥집까지 다니며 “농협 배추를 사라”고 권했다. ‘고주모’ 23년 회원인 정씨는 “월급을 준다고 해도 이렇게 열심히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산물백화점은 매장 앞 광장에서 매달 3~4일씩은 전국 각 지역의 농협을 돌아가며 초청해 직거래 장터를 연다. 매출이 많게는 한 번에 6000만원씩 나온다. 편의시설이 잘 마련된 대형마트에 젊은 고객을 뺏겨 고민하던 끝에 자체 인터넷몰도 만들었다. 지난해 온라인 산지 직거래 코너 등을 개발해 이제는 20~30대 온라인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 고객 전체보다 50%나 많다.

 얼마 전에는 농협은행 점포 한쪽에 친환경 농산물과 한우를 파는 ‘웰빙마트’를 만들었다. 은행에 잠깐 들른 고객까지 마트 손님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농산물백화점이 판매하는 상품은 62%가 국산 농수산물이다. 전국 140여 개 지역 농협이 주 거래처다. 제주 한경농협 김재진 유통과장은 “우리는 똑같은 상품을 파는데도 농산물백화점 고객들이 유독 ‘귤이 참 신선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공판장·도매시장을 거치면서 며칠씩 걸리는 일 없이 하루 만에 배송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산지에서는 공판장에 넘길 때보다 20% 정도 값을 더 받는다. 직거래의 힘이다. 김 과장은 “감귤 농가들이 원래 농협 판매에 100t을 맡겼는데 ‘값을 잘 쳐준다’고 소문이 나서 지난해엔 600t이나 몰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사과를 직거래하는 경북 봉화춘양농협 윤한승 판매과장은 “예전에 공판장으로 사과를 넘길 때는 조금만 풍년이면 값이 뚝뚝 떨어지곤 했는데 여기선 우리가 제시한 가격 그대로 쳐준다”고 말했다. “농민들한테 미리 대금을 주라며 무이자로 2억원을 줬다”고도 했다. 이처럼 고객만이 아니라 전국의 공급처도 동반자로 배려하는 게 농산물백화점의 남다른 경쟁력이다.

 박준식 조합장은 “대도시 농협이라는 특성 때문에 농산물을 도시에서 판매하는 창구 역할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트 순익이 연 1억원에 머물더라도 조합원의 농산물을 많이 파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도시에 있는 다른 농협들도 관악농협과 유사한 방식으로 고민을 풀어 가고 있다. 주부대학 등을 운영하고 직거래로 신선 농산물을 판매하는 전략이다. 서울 강서, 동대구 농협 등 전국 15개 농협이 은행 창구를 2층으로 밀어 올리고 1층에 마트를 설치하는 등 농산물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37개 농·축협이 113개의 직거래 장터를 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