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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서태지 세대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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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14면

좌 유동근·황신혜 주연 ‘애인’(1996). 우 장동건·김하늘 주연 ‘신사의 품격’(2012년).

“이 나이에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드라마 ‘애인’, 1996년).
“힘들게 번 돈을 왜 마누라·자식 하고 나눠 쓰나.”(드라마 ‘신사의 품격’, 2012년).

마이웨이 세대 DNA

16년을 사이에 둔 인기 드라마 속 두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이렇게 다르다. 유동근에서 장동건까지, ‘애인’세대에서 ‘신품(신사의 품격)’세대까지 사회상의 변화가 느껴진다. ‘애인’의 조경 전문가 정운오(유동근)와 ‘신품’의 건축사무소 소장 김도진(장동건). 이들의 나이는 각각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 여유도 있는 편이란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는 태도는 대조적이다. 이벤트 회사 커리어우먼 여경(황신혜)과 불륜의 사랑에 빠진 운오는 불혹(不惑)을 앞두고 찾아온 사랑에 자조와 체념의 태도를 보인다.

반면 싱글인 도진은 자신만만하고 여유롭다. ‘애인’세대에게 마흔 살은 ‘아저씨 세대’로의 진입을 뜻하지만 도진과 친구들 같은 ‘신품(신사의 품격)’세대에겐 그렇지 않다. 사랑과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스스로를 ‘언제든 사랑할 수 있는 매력남’으로 여기며 외모를 가꾸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도진의 친구이자 아내와 사별한 변호사 윤(김민종)이 17세나 어린 친구 여동생 메아리(윤진이)와 결혼에 골인하는 건 그래서 가능하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마이웨이 세대는 마흔 넘으면 인생 다 산 것처럼 여기던 예전 세대와 달리 40대에도 로맨스와 낭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신사의 품격’이 20% 넘게 시청률 고공행진을 한 건 이런 중년의 내면을 정확히 짚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인의 성취를 중요시하고 자기애가 강한 마이웨이 세대는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외모 가꾸기로 나타난 게 꽃중년(미중년) 현상이다. 아저씨가 아니라 아직도 스스로를 ‘이팔청춘’이라 여기는 심리가 깔려 있다. 겉모습이 늙어 보이는 것만 꺼리는 게 아니라 정신이 늙는 것, 즉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에도 이들은 민감하다. 그래서 자기계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화상품 소비에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출판·영화·뮤지컬·드라마 등의 주력 소비자층이 기존의 20∼30대에서 40대로 이동하는 현상이 뚜렷한 게 이를 방증한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문화 관련 지출이 급감했던 현상과는 대조적이다.

영화의 예를 보자. 영화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지난 1년간의 관객 예매율 집계에서 40대 관객(25.8%)은 처음으로 20대 관객(20.1%)을 앞질렀다. 2002년 이 사이트 40대 관객 예매율은 3.4%였으니 7.6배나 높아진 것이다. 최근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레미제라블’도 40대 덕을 톡톡히 봤다. 이 영화 예매층 중 40대는 25%나 된다. 극장가는 10~20대가 티켓파워를 갖고 있는 걸로 알려져 왔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영화 개봉 후 한 달 만에 15만 부(민음사+펭귄클래식코리아) 넘는 판매액을 올린 원작소설도 40대의 호응을 등에 업었다. 이미현 민음사 홍보부장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춘 40대가 지갑을 열었기에 판매량이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독자가 절대적이던 출판시장 흐름에도 파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마이웨이 세대의 ‘DNA’를 살펴보면 이런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다. “93년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대전엑스포가 열렸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를 발표했다. 그리고 우린 X세대였다”고 ‘신사의 품격’ 도진은 설명한다. 마이웨이 세대는 이렇게 ‘신인류’라 불렸던 90년대의 ‘X세대’와도 겹친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와 PC통신에 열광했던 세대다. 그들이 나이를 먹어 지금 문화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경영·트렌드 칼럼니스트 김용섭씨는 지난해 말 펴낸 라이프 트렌드 2013에서 이런 현상을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뮤지컬 ‘광화문 연가’ 등의 흥행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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