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자기 연출의 대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슈바이처(左), 마키아벨리(右)

슈바이처와 마키아벨리. 흔히 선과 악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살았던 시·공간은 달랐어도 각각 휴머니즘과 권력지상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이해돼왔다.

과연 그게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 걸까. 그들의 숨겨진 얼굴을 들춰낸 두 권의 평전이 나왔다. 일종의 ‘거꾸로 읽는 위인전’이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사람만큼 흥미진진한 인문학 텍스트가 있을까. 두 권의 책이 반가운 이유다.

역사와 인간, 사회와 개인의 역동적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슈바이처
닐스 올레 외르만 지음
염정용 옮김
도서출판 텍스트
456쪽, 2만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이 책의 주인공에게 딱 맞다. ‘원시림의 성자(聖者)’라 불리는 루트비히 필립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다. 칸트를 연구한 철학자, 생명 존중 사상을 주창한 인본주의자, 아프리카 흑인의 고난을 덜어준 의사, 탁월한 오르간 연주자이자 바흐의 전기를 쓴 문화철학자, 한마디로 팔방미인형 천재의 전형이다.

 특히 나이 서른에 시작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로서 헌신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의 인도주의적 의료 활동은 그에게 1952년 노벨평화상 영예를 안겨줬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 위대한 사람을 두고 지은이는 왜 “오래 전에 이미 슈바이처의 새 전기가 나왔어야 했다”고 단언하는 것일까. “역사학의 임무는 (…) 원래 어떠했는지 보여주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역사와 신학을 전공하고 윤리학 교수로 일하는 이 전기 작가는 “슈바이처의 삶 전체에 대해 합당한 평가를 내리려 한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시대의 총아가 된 슈바이처가 위인(偉人)이 될 자격이 있는 위인(爲人)인가 꼼꼼하게 뜯어보겠다는 학자적 결의가 풍긴다. 아프리카사에 정통한 유럽인이 저자라는 사실이 이 도발적 평전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밀림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자기 꾸미기에 탁월한 연출가였다. [사진 텍스트]

 아프리카의 수백 개 병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슈바이처의 원시림 병원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그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슈바이처가 그 바쁜 진료 중에도 수만 통의 편지를 발송했고, 그 수신자가 아인슈타인에서부터 흐루시초프를 거쳐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다국적 권력자였던 건 왜일까.

 슈바이처는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정치적 인간’이었는데 이 핵심 사실이 지금까지 대부분 간과돼 왔다. 그는 의사로서 돌본 흑인들을 친구로 대하기보다 측은히 여겨 의술을 베풀어야 할 하급 인종으로 여겼다. 유럽인으로서 그는 유색인에게 시혜를 준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의 인도주의적 선행에는 식민주의가 악이라는 판단이 없었다.

 이처럼 독일어권에서 슈바이처가 원래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포괄적이고 학술적인 전기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기에, 필자는 그 공백을 메우려는 의도로 집필했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에서 삶의 위대한 순간과 결정을 언급하면서 그 날짜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속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그렇듯 자신의 인생을 고상하게 꾸미려는 의도가 짙다. 기차의 3등석을 타고 해진 옷을 입은 채 점잔을 떠는 슈바이처의 모습은 연출한 것이라는 게 뻔하다 해도 매력 있는 노장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그렇다고 슈바이처가 위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니다. 8학기가 채 안 되는 기간에 신학·철학·음악이론을 병행해 공부한 걸 보면 분명한 목표 의식을 세우고 효율적으로 집중해 성공에 이르는 낙관주의자의 면모가 강하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과 함께 지름길을 찾는 본능도 놀랍다. 2차 세계대전 같은 파괴적인 전쟁 이후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향점과 본질을 찾아 나섰을 때 이런 욕구를 반영하는 이상적인 영사막 구실을 한 대형(大兄)의 풍모도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오랜 세월 힘들고 괴로운 자아 발견의 과정을 거친 노력가형 천재라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슈바이처의 진실을 파헤친 신랄한 비판 뒤에 필자가 쓴 에필로그는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람은 어떻게 신화로 변하는 것일까? 각 시대는 마치 낯설고 이름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해안에 도달하듯 자신만의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과 업적은 하나의 공통된 내용으로 통일될 수 없다.”

 한 시대의 우상이 된다는 건 위험하고도 대단한 일이다. 이 책의 부제 ‘생명을 위해 삶을 던진 모험가’가 담은 뜻이다. ‘슈바이처 신화’는 우리에게 역사를 엄정하게 되새김질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현대사에 명멸한 수많은 위인과 신화를 돌아볼 때, 이 새로운 슈바이처 전기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이미 출간된 전기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다시 쓰는 한국 인물사가 얼마나 많아져야 할까, 헤아려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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