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 불황 빠진 항공업계 "M&A가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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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불황을 맞고 있는 세계 항공업계에 합병과 제휴바람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경기부진과 경쟁심화에 따라 사정이 나빠지고 있던 터에 9.11 미 테러사태까지 덮쳐 경영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항공사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최대인 아메리칸항공(AA)의 최고재무책임자(CFO)톰 호튼은 "요즘 하루에 수백만달러씩을 까먹고 있다. 곧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심각한 경영난=미국 항공사들은 지난 9월 정부로부터 50억달러를 긴급 지원받았다. 두달도 안돼 이 돈은 거의 바닥이 났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8일 항공사의 자금위기가 워낙 심각해 대규모 업계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보도했다.

항공사들이 이미 인력과 비용을 크게 줄이고 있지만 수입감소폭이 이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콘티넨털항공의 경우 테러이후 노선을 20% 줄이고 12% 가량의 비용지출을 절감했지만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미 항공업계 매출은 전달에 비해 45%가 줄었다. 탄저병과 추가 테러에 대한 우려때문에 여행이 줄어 10월 감소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자금난으로 파산신청을 했던 스위스항공은 26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으며, 벨기에의 사베나항공은 지난 7일 파산했다. 캐나다 2위 항공사 캐나다 3000도 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 재편 바람 부나=전문가들은 비용절감 정도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머잖아 항공사간 합병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최대 항공사인 일본항공(JAL)과 3위인 일본에어시스템(JAS)은 내년 가을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통합할 방침이다.

미국에서도 델타항공의 최고경영자(CEO)레오 멀린이 지난 6일 "연내 미 항공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AA.유나이티드(UA).델타 등 업계 1~3위의 대형 항공사가 노스웨스트.콘티넨털.US항공 등과 통합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구체적 예까지 들었다.

그는 "합병에 관한 규제를 풀어달라"고도 주문했다. 그동안 미국 항공업계의 인수.합병(M&A)은 특정지역 노선을 독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규제를 받아왔다. UA가 US항공을 인수하려던 계획도 지난 7월 독점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두 회사가 합치면 항공료가 인상되고 서비스가 나빠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테러사태 이후 항공사들의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합병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업계 주문이 이어지고 미 정부도 그런 요구를 귀담아 듣고 있다.

유럽 최대인 브리티시항공(BA)의 CEO 로드 에딩톤은 지난달 "유럽에는 BA.에어프랑스.루프트한자 같은 메이저 3개사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유럽 항공사도 합병해야 하며, BA는 KLM항공(네덜란드)과 합병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LM에 눈독을 들이기는 에어프랑스와 루프트한자도 마찬가지다.

AA와 BA가 대서양 횡단노선을 놓고 제휴를 강화한다고 밝히자 노스웨스트.델타 등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정부 규제로 아직 합병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선 항공사간 제휴가 비용절감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합병 장애물도 많아=합병후 적자노선을 폐쇄하고 운임을 올릴 수 있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직원을 줄이다 보면 서비스 질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 입김이 워낙 센 항공사들이 사내 반대를 무릅쓰고 합병을 강행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또 미국내 항공사 합병도 독점당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과 유럽, 유럽내 항공사간 합병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국적이 다른 항공사가 합치려면 항공사업에 관한 정부간 조약이 재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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