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오는 날의 의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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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다. 때로는 일부러 비를 맞으며 걷고싶기도 하지만, 비를 맞는 일은 여간 짜증이 아니다. 「버스]에서 내려 뛰기도 뭘하고 해서 타박타박 걷는데 누가 말을 건네 왔다. 『우산, 합께 받으시죠』-검정우산을 치켜든 남자였다. 순간 나는 흠칫 놀라, 그를 쳐다봤다. 가슴이 몹시 뛰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걸었다. 몇 발짝 따라오는 듯하더니, 한참 후 돌아보니 없었다.
○…엄마가 생각났다. 남자들의 호의를 섣불리 응낙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오빠도 그랬다. 엉큼한 사내일수록 친절한체 하느라고. 그러나, 친절한 남자들 모두 엉큼할까. 비오는 날, 우산을 받자고 한 그 남자도 작은 친절을 미끼삼는 치한일까.
내가 우산을 받고 거닐 때, 비 맞으며 걷는 사람을 바라 볼 때마다 건네고 싶었던 말-.
『우산, 합께 받으시겠어요.』
○…그건 결코 엉큼한 마음에서는 아니었다. 아까 그가 진심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나 무안해하고 나는 실수를 저지른 걸까. 나는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신문을 펴들었다. <전완님·21세·회사원·서울서대문구당천동2의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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