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정신 살려야 나라가 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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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전작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와 신작의 제목은 동어반복이다.

공자와 오랑캐, 역사적으로 문명과 야만을 대변하는 이 두 개념을 통해 저자의 '물구나무 선 비전'을 노출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나라의 힘을 키울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이다. 답은 공자가 내걸었던 가치의 정반대에 있는 '오랑캐 정신'을 살려야 세계화 시대의 정글에서 생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중문학자가 쓴 도발적인 국가 전략서 혹은 부국강병 지침서다.

저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펴낸 후 온갖 비난과 찬사를 들으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유교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저자가 후속편을 쓴 이유는 그 때문인데, 그동안 미국.중국.일본을 왕래하면서 무엇보다 중국과 일본이 유교적 자존심을 버리고 변화하는 모습도 책을 펴내는 자극제로 작용했다.


어쨌거나 극단적으로 논리를 단순화시키는 것은 저자 특유의 소리 지르기 방식이다. 이 방식을 통해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힘'이다.

조선이 망하고 식민지가 되고 전쟁을 겪고 IMF체제를 맞는 등 격랑의 지난 근대화 1백년을 통해 전통 유교를 비롯한 아시아적 가치가 무슨 힘을 발휘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동북아 문화를 옹호할 법한 중문학자의 거꾸로 된 진단이 놀랍지만, 유교의 트레이드 마크인 도덕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저자는 되묻는다.

"오랑캐 사회에 도덕이 없다고 예단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오랑캐라고 폄하하는 중심과 권력의 논리만을 왜 좇아야 하는가?"

우리는 원래 오랑캐고 그 오랑캐라는 말이 나쁜 의미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직 논의가 더 진전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갑골문 등 중국 고대언어 전문가인 저자가 지난 2년간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여진족어.만주어 등 동북아시아 옛 언어를 공부한 결론으로 하는 말이라 단박에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다.

저자에 따르면 오랑캐라는 말은 만주어에서 유래한다. 호랑이가 내는 소리 '오르'라는 말과 외치다.고함을 지르다는 의미의 '카이참비'가 합쳐진 '오륵캐'에서 '오랑캐'로 변했다는 것이다.

즉 오랑캐는 '호랑이가 으르렁 외치는'뜻을 담고 있다. 동북아시아 호랑이 토템신앙에 잠재된 웅혼한 기상과 개척정신을 함축한 표현이라는 것이며, 바로 그 오랑캐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도덕성을 완전 배제한 극단적 단순함을 지적하자 저자는 "생존을 먼저 한 후에 도덕을 말하자"면서 "하지만 그 도덕도 유교의 독점적 가치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처방은 영어 공용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한 나라가 한 언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한자어가 우리말을 덮어쓰기 이전의 순수 우리말을 동북아시아 언어 전통에서 고찰하고 있는 저자는 순수 우리말과 여진.거란.만주족 언어와의 연관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연관성을 한글창제와도 조심스럽게 연결시키며, 성리학이 새 이념으로 자리잡아가는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이 한글의 창제를 통해 한자와 한글의 공존을 추구했던 "국제적 감각"과 "유연한 적응력"을 높게 평가한다.

이미 혼합어인 한국어에 영어 하나 보탠다고 크게 우려할 것 없다며 저자는 영어 공용화가 된다 해도 기업과 학술 그리고 뉴스 등 일부 영역에만 확산되고 일상적 삶의 공간에선 우리말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궁극적으로 영어 공용화는 다문화.이중언어가 보편화될 시기를 살아갈 20세 이하 차세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교육조차도 철저히 "2개 언어를 구사하며 국제감각을 갖춘 전략가와 장사꾼"을 양성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워낙 생소한 내용을 많이 담아 어느 하나의 이념으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저자의 견해는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주장과 많이 닿아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 현실을 중시한 실용주의자라고 말한다해도 과거 유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앞선 것은 모두 허학(虛學) 이고 자신만이 실학(實學) 이라고 말했던 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우리 근대사에선 거의 없었지만 중국과 일본에선 많이 논의됐던 '완전한 서구화론'에도 근접한 이 책을 통해 늦었지만 논의를 새롭게 촉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을 키우자는 저자의 발원과 달리 우리 사회가 좋은 의미의 오랑캐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안좋은 의미의 오랑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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