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맞댄 사랑과미움 가족안에 神이 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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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교회에 안 나갈래요". 몇해 전 갓 중학생이 된 아들의 '통고'다. 아빠인 최일도 목사의 다일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아찔했다.

최목사는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오라"고만 일렀다.

'몸만 곁에 있는 아들'을 원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3년, 아들이 무얼하고 나다니는지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꾹 참았다. 그동안 랩 가수를 하겠다고 설치기도 하던 아들은, 몇년 뒤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일단 공부도 병행해야겠더라구요". 그러면 방황은 끝난 거냐고 씩 웃으며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할만큼 했어요. 포르노도 웬만한 건 다 뗐다구요". 그 뒤로 아들의 성적이 쑥쑥 올랐음은 물론이다.책 제목대로 '조금씩 놓아주기'의 실제 사례다. 그의 말대로 "내 마음 속의 욕심과 기대를 슬그머니 내려놓기"에 해당하는 가족사랑의 방식 말이다.

'오팔팔의 대부(代父) ' 최목사 성장과정에서 겪은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수녀 출신 아내와의 사이에 3남매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체험를 담은 이 책은 간단치 않다. 그건 우선 기독교적 사랑의 메세지와 구분되는 체험적 사례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서술 때문이다. 한지붕 식구면서도 왕왕 깊은 상처를 안겨주기도 하는 한 가족에 대한 이 에세이는 그 때문에 설득력이 높다.

그 어떤 사회학적 연구서와 비교해서도 그렇다.딱딱한 학문이란 본디 '가정의 내밀한 역학(力學) 심리'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목사의 이름으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털어놓은 가족사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떤 이는 가족이란 말만 들어도 증오 때문에 몸이 떨린다고 했고, 어떤 이는 죽을 때야 겨우 만난 가족을 두고 얼굴을 돌리기도 했다. 도대체 가족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또 그토록 질긴 관계로 서로를 얽어매는 것일까?"

알고 보면 최목사가 밝힌 가족간의 갈등도 그렇다. 젊은 시절 별명이 '화염 방사기'인 그는 욱하는 성격에도 뒤끝은 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결혼 초기 고부 갈등 끝에 최목사의 어머니가 휑하니 가버렸다.

부부싸움 끝에 급기야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튀어나왔다. "수녀생활 10년했다는 여자가 겨우 그것 밖에 안되는 거야?" 부서질 듯 문을 닫고 뛰쳐 나오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벌써 후회를 했지만, 집에 돌아와 꼼짝않고 울고 있던 아내를 이렇게 달랬다."내가 그래도 뒤끝은 없쟎아". 그 말에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성격에 뒤끝까지 있으면 그게 인간이에요?" 저자는 화끈한 성격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허물없다는 사이끼리의 발가벗은 감정 폭발이 남기는 '화상'에 대해 커다란 깨우침을 고백한다.

그러면 이런 그의 글을 기왕의 고만고만한 에세이들과 구별짓는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그건 "나는 가족 안에서 비로소 신성(神性) 을 발견한다. 천국의 그림자가 가정이다"는 발언. 따라서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랑을 깨치게 해준 사람이 바로 가족이라는 속 깊은 철학적 입장 때문이다. 가정의 울타리에 국한된 '갇힌 사랑'에서 벗어나려는 몸짓도 글에서 묻어난다.

베스트셀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의 저자인 최목사(45) 는 현재 안식년을 맞았다. 교회 담임목사직을 잠시 맡겨두고 현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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