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권 독립'땐 어떤 변화 생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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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대립'사태를 몰고 온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국민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대상 범죄의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이 보장되고, 경찰 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면 똑같은 사안으로 이중 조사를 받는 일은 일단 줄게 된다. 그러나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피조사자 인권보호 문제는 숙제로 남는다.

◇이중 조사 문제=가령 폭력사건으로 경찰에 입건될 경우 지금처럼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면 원칙적으로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는 번거로움은 덜게 된다.

그러나 경찰 조사가 잘못됐을 때 이를 시정하고 피해를 본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는 법적 장치는 현재로선 분명하지가 않다.

대검 기획조정부 金모 검사는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 중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고, 법규를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해 평균 경찰이 송치한 1백40만명의 민생사범 중 7만여명 정도가 검찰에서 기소.불기소 의견이 뒤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를 경찰은 "한자(漢字)가 잘못 쓰이거나 적용된 법률이 바뀐 것 등을 포함한 왜곡된 통계"라고 반박한다.

◇변사자 검시=검사의 변사자 검시(檢屍)권도 민원이 계속돼온 부분이다. 가족이 변사했을 경우 별다른 타살 흔적이 없어도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받을 때까지 시신을 넘겨받지 못해 장례 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많았다.

경찰서도 많고 인원도 많은 경찰이 검시권을 가지면 유족 입장에서는 장례 절차가 빨라지는 이점이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지금도 검사는 서류상으로만 변사사건 지휘를 할 뿐"이라며 "검시권을 경찰에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살로 위장된 타살일 경우 변사 직후 부검을 하지 않으면 사건의 진상이 영원이 묻힌다는 문제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경찰에게 검시권을 줄 것이냐, 아니면 경찰의 의견을 검사가 검토해 최종 결정을 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느냐의 판단이 남았다.

◇긴급체포 및 석방=경찰이 검사의 승인없이 긴급체포를 할 경우 긴급체포 건수가 늘게 되고, 자연히 억울한 사례도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01년 경찰이 신청한 10만9천6백여건의 구속영장 중 검사가 기각한 건수가 2만4천여건(기각률 18%)에 이른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경찰은 긴급체포를 할 때와 긴급체포한 피의자를 석방하는 절차의 번거로움을 문제 삼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말 절도 혐의로 서울시내 한 경찰서가 긴급체포한 朴모(21)씨는 경찰이 검사의 석방 승인서를 받아내는 데 시간이 지체돼 반나절을 더 유치장에 있어야 했다.

당시 경찰은 朴씨의 혐의가 발견되지 않자 관례대로 담당 검사에게 석방 승인서를 팩스로 보냈다. 하지만 검사는 "서류를 가지고 와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경찰은 서류를 챙겨 찾아갔으나 검사가 외출을 해버려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검찰은 "신체자유를 통제하는 긴급체포나 석방을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검토하는 것은 인권보호를 위한 필수장치"라고 반박한다. "경찰이 외압이나 뇌물을 받고 범죄자를 그냥 풀어줄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경찰도 승인제도 폐지 이후 자체적으로 긴급체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완책 따라야=법조계와 학계는 사법정의를 실현하고 인권 보장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다.

경희대 법대 서보학(徐輔鶴)교수는 "검찰에 지나친 권한이 집중돼 대형 사건의 은폐.축소가 일어났고, 구타사망 사건도 터졌다"며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인권 증진에 도움이 되는 만큼 일단 경찰에 1차 수사권을 주고 이에 필요한 인권보장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시했다.

변협 공보이사 하창우(河昌佑)변호사는 "수사 절차의 신속보다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현 단계에선 긴급체포시 검찰 승인제도 등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 기능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원배.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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