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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의 고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940년 2월「뉴욕」시립대학은 세계적인 석학「버트런드·러셀」을 철학교수로 임명했다. 그러자 동대학 이사회의 결정이 발표되자「러셀」의 성사상이 극히 위험하고 이름난 무신론자이며 심지어는「용공분자」라 하여 그의 취임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러셀」의 취임을 지지하고 나선 인사들이 없지 않았고 이사들의 다수는「러셀」경의 임명을 재확인해서 반대운동은 일단 좌절됐다.
그러나「뉴욕」시민에게는 고발의 권리라는 것이 있었다.「브루클린」에 사는「진·케이」라는 한 무명의 여자가「러셀」은 성적부도덕을 제창하는 사람이니, 자기 딸이 그러한 악덕한의 강의를 듣고, 타락하지 않을까 두렵다면서「뉴욕」최고재판소에 납세자로서의 고소를 제기했다. 공판결과「케이」부인이 이겨서「러셀」은「뉴욕」시립대학의 강단에 설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것은 미국 대학사에 큰 오점을 찍은 불행한 사건이었고 빗나간 고발권의 행사였다. 그러나 납세자가 가진 고발권이 시민대회니「데모」니 하는 소란스런 운동보다 더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좋은 예이다.
모 대학의 대학원에 적을 둔 한 법학도가「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정한 것은 종교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6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해서 법무장관을 상대로 고소를 제기했다. 국교가 아닌 기독교의 제일을 휴일로 정하고 통금을 풀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관을 동원하는 것은 납세자가 낸 공금을 오용하는 것이라고 소장에 썼다고 한다. 이 고발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분수준자가 알바 아니다. 그러나 무명의 시민이 품은 공관이나 사관이 한 납세자의 이름으로 법원에 호소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케이스」가 나라의 민주화에 이바지할 바가 크다는 것을 다짐할 필요가 있다.
「러셀」경의 경우가 보여주듯 이 법의 판단이 반드시 옳진 않다. 그러나 적절한 절차를 거친 법의 그것보다 더 옳은 판단은 없다. 그리고 법은 언제나 무명납세자의 보호자요, 벗 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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