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빈곤문제 해결 '발등에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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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1인당 소득은 가장 가난한 나라에 비해 아홉배가 많았다. 오늘날 이 비율은 거의 1백대 1로 늘어났다.

이같은 극적인 변화는 기본적으로 선진국의 산업화가 세계의 다른 부분에 골고루 혜택을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부자가 더 부유해진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의 절대적인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물론 이들이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긴 하다.

세계은행은 앞으로 10년간 극빈자들의 숫자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는 약 1억1천6백만명, 중남미에서는 5천2백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저개발 지역에서 빈곤은 남성보다 여성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극빈 상태에 있는 13억 인구 가운데 70%가 여성이다.

지난 35년간 30개 이상 국가에서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1인당 소득이 감소했다.많은 전문가들은 정책의 초점이 소득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빈곤 그 자체를 축소하는 데 맞춰져야 하며, 경제성장이 그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소득 불평등 해소 전략이 성장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1인당 소득이 하루 1달러이면서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어느 나라를 가정해보자. 이 나라가 설사 소득 불평등을 완전하게 제거하더라도 1인당 소득은 여전히 하루 1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광범한 소득 불평등은 빈곤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첫째, 높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은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킬 수 있다.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잠재적 생산성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불평등이 적은 사회는 성장률도 높고, 성장 패턴도 안정적이다.

둘째, 경제성장률이 같더라도 불평등 정도가 심하면 그 효과는 작다. 예컨대 브라질에서는 소득수준 하위 20%가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에 불과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비율이 10%에 달한다. 만일 경제성장률이 같다면 하위 20%의 소득은 인도네시아가 브라질보다 네배나 빠르게 증가하게 된다.

셋째, 저개발 국가에서는 불평등 정도가 심해지면 범죄나 폭력이 함께 증가한다. 많은 나라에서 그러한 폭력의 증가는 가난을 심화한다.

넷째, 높은 불평등은 시장 제도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높다.

일반적으로 소득 불평등은 바람직하진 않지만 세계화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생각이 폭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해 있는 선진국의 예를 보면 이런 생각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을지는 모르나 정부 정책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1977년부터 97년 사이 프랑스의 소득 불평등 정도는 줄었고,캐나다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반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주 심해졌다.

똑같이 세계화에 노출됐지만 소득 분배는 아주 달랐다는 얘기다. 메시지는 뚜렷하다.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증가는 세계화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다.정부 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극빈층에게 더 많은 성장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앤드루 마크 (전 유엔사무국 국장.IHT 11월 9일자 기고)
정리=윤창희.주정완 기자 thepl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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