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권하는 사회…‘집없으면 혜택 많은데 집 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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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5년 전 분양받은 경기도 의정부 아파트에 살고 있는 40대 초반 직장인 정모씨는 현재 내놓은 집이 팔리면 다시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거주할 계획입니다.

전세계약 때마다 이사를 다니거나 집주인 눈치 보는 게 싫어 2억원 가까운 대출을 받아 어렵게 마련한 집이지만 다시 세입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은 겁니다.

집주인이 됐지만 매달 80만원가량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는 ‘월세’와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삶의 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이 한 채 있다고 각종 정부 혜택에서 배제돼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주택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요즘 집 가진 사람들은 좌불안석입니다. 대부분 은행 대출을 동원해 힘들게 마련한 집인데 시세가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경영연구원은 ‘무리한 대출로 집을 마련했으나 원리금 상환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가구’가 넓게 잡아 1569000가구로 우리나라 전체 주택보유가구(10705000가구) 14.7%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이들 유주택자들은 추락하는 집값 전망에 너도나도 집을 내놓을 태세입니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를 접자 주택보유 부담이 너무 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겁니다.

강남 대치동 T공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남에 집 한 채를 갖는 건 과거엔 모두에게 재테크의 최종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아파트를 팔겠다고 집을 내놓고 있습니다. 사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아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지만 그냥 무주택자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통계로 나타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강남3(강남·서초·송파)의 자가거주율은 현재 52.4% 2005년 대비 6.5%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집을 팔고 다시 사지 않아 세입자 비중이 늘어난 겁니다.

깡통주택 소유자도 세금·대출·각종 복지기금 등 지원에서 배제

유주택자들이 이렇게 무주택자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종 정부 혜택이 무주택자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유주택자로서 장점은 사라지고 무주택자로서의 이점이 더 크게 늘어난 겁니다.

무주택자는 일단 세금 부담이 적습니다. 유주택자가 매년 내야하는 재산세와 종부세 부담이 없죠. 강남권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면 매년 수백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낼 수도 있습니다.

무주택자에게는 다른 부동산 관련 세금 혜택도 많습니다. 청약 저축 등 다양한 주택 마련을 위한 저축과 월세 및 전세대출금 원리금상환액에 대해서 소득공제 혜택이 있고요. 저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도 대상입니다.

무주택자는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제공하는 보금자리론 대출에서도 금리 우대 혜택을 받습니다. 낮은 금리의 국민주택기금 대출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정책 수혜 대상에서 유주택자는 제외되거나 불이익을 받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장학생을 선발할 때 기준이 무주택자입니다.

과천시의 장학금 지급 조례를 보면 ‘대상자는 그 부모가 무주택자이거나 재산세 과세시가표준액(가옥, 토지) 500만원미만이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앞으로 공급이 크게 늘어날 전망인 임대주택도 무주택자들만이 대상입니다.향후 공급될 임대주택은 저렴한 임대료에 주거 여건도 기존 임대주택에 비해 뛰어날 전망입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가 시세의 절반 이하로 공급할 계획인 행복주택(영구임대주택) 20만가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급하고 있는 장기안심주택이 그것입니다. 장기 안심주택은 전세 재계약 때 전셋값이 연 5% 이상 오르면 서울시가 상승분을 지원합니다.

새 정부에서는 전월세 상한제도 시행될 전망이기 때문에 급등하는 전세금 부담도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무주택자=서민’ 공식 맞나?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주택자들이 받는 혜택은 세금 혜택 등 금전적인 것은 물론, 장학금 지원 대상 등 비금전적 혜택까지 많습니다. 정부가 지원 대상을 정할 때 기준을 무주택자 여부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부동산 활황기를 거치면서 ‘무주택자는 서민, 유주택자는 부유층’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하지만 시장 침체기에 그런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유주택자이면서 세입자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 무주택자이면서도 대형 전세에 현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요즘은 무주택자들은 집을 사기 어려운 시대라고요. 생각해보십세요. 지금 집을 사는 건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걸 뜻합니다. 너도나도 집값 하락을 전망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무주택자로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기회는 포기해야 합니다. 새 정부는 무주택자를 위해 살기 좋고 입지 좋은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대출 지원 및 세금 혜택을 줄 계획입니다

새 정부는 출범초기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그런데 무주택자들을 위한 서민주거 안정 대책은 또 강화하려고 합니다. 무주택자를 위한 대택은 집을 사는 것을 꺼리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딜레마에 빠지는 겁니다.

이를 해결하는 게 새 정부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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