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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이후의 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어느 가정에서나 아버지의 주정이란 못견디게 괴로운 일일 것이다.
우리집도 아버지의 주정이 그칠줄 모르고 술이 춰해서 돌아 오셨을때는 집안은 폭풍전야 같은 무거움이 내려앉는다.
그날도 술에취한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주정을 부리시고는 잠이 드셨다.
아버지의 잠든 모습에서 초라함을 느낀 나는 북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하염없이 울면서 「가정을 파괴하는 술」이란 글을 쓰다 잠이 들었었다.
○…이튿날 아버지는 조그마한 약병과 함께 소설책 한권을 들고 일찍 들어오셨다.
술끊는 약과 술마시는 대신 독서를 하시겠다는 아버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닷새가 지나서다.
엄마는 아버지의 모습이 서글퍼 보인다고 조금씩만 드시라고 권하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쓴 글을 읽으셨다고 하시며 매일아침 금주를 버릇처럼 되뇌시던 때와는 다르시다.
○…밤 열한시 반, 통금 예비「사이렌」이 둔하게 울린다.
옆자리에 잠드신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머리맡엔 읽다 엎어둔 소설책….
벌떡 일어나 서랍을 열고「가정을 파괴하는 술」이란 글을 찢으며 창을 내다본다.
별빛이 찬란하게 쏟아진다.

<경기도 평택읍 통북1리51·이형근·20세·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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