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 급하다던 토익응시생, 화장실서 '찰칵'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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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립대 출신인 심모(25)씨는 지난해 5월 친구 김모(25)씨와 함께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토익·텝스 대리시험 봐 드려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취업 준비를 앞두고 토익 점수가 급히 필요하다는 응시생 여러 명이 연락해 왔다. 심씨는 시험 날짜를 5월 27일로 정한 뒤 박모씨 등 5명에게 원서를 접수하라고 했다. 본인도 같은 회차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시간에 스마트폰을 몰래 숨겨 소지하라”는 ‘지령’도 내렸다. 시험 당일, 서울 양천구의 시험장에서 종료 30분 전에 문제를 다 푼 심씨는 감독관에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감독관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화장실 칸막이 안에 들어서자 스마트폰 카메라로 재빨리 답안 번호를 베껴 쓴 쪽지를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친구 김씨에게 전송했다. 김씨는 즉시 이 사진을 응시생 5명에게 보내 줬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험을 보던 박씨는 몰래 사진을 훔쳐보는 데 성공했고, 990점 만점에 965점을 받았다. 다른 응시생들도 대부분 800점대 점수를 얻었다. 심씨와 김씨는 이들에게 1인당 100만~200만원을 사례비로 송금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박은재)는 취업준비생 등을 상대로 돈을 받고 토익과 텝스 등 영어시험 부정행위를 해 준 혐의(업무방해 등)로 심씨·김씨, 이모(26)씨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심씨 등은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응시생 22명을 상대로 3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응시생 1인당 적게는 45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까지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같은 날 같은 답안지를 전송받은 응시생들 간에도 커닝 실력에 따라 점수가 300점 이상 차이가 났다”고 전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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