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을 위한 「우울한 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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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러분! 돌아오는 토요일은 봄 소풍가는 날입니다. 그러니…』
다음 말은 중단되고 말았다. 우와! 봇물이 터진 듯 쏟아져 나오는 환성과 손뼉치는 소리 이 교실이 떠나갈 듯하다. 저렇게도 기쁠까? 온몸을 흔들어대며 까만 머리를 요리조리 돌려대는게 꼭 예쁜 꽃무늬를 보는 것 같다. 잠깐 동안이지만 나도 그 동심 속으로 말려들고 말았다.
나는 손뼉을 찰싹찰싹 쳐가며 선생님을 향해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만 같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눈앞이 흐려진다. 그때 이웃교실서 한바탕 떠들썩한다.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선생님! 소풍은 어디로 갑니까?』숙이의 또랑한 음성이다. 나는 소풍갈 장소며 미리 준비할 것을 얘기하면서도 정신은 딴데가 있었다.
며칠 전에 소풍을 가던 시내학생들의 새 옷차림과 비교도 되지 않을 남루한 옷을 입은 눈앞의 어린 모습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에 나는 애써 기쁜 표정을 지으며 『여러분! 소풍가는 날은, 엄마더러 헌옷일지라도 깨끗이 빨아 달래서 입고 오세요!』라고 덧붙여 말했다. (조현옥·여교사·전남 광산군 서창면 상무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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