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귀걸이하고 길거리 걷기만 했는데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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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를 테마로 디자인한 목걸이·귀걸이를 착용한 이일정씨. [안성식 기자]

영국 런던, 미국 할리우드, 태국 방콕,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두바이, 홍콩 등 세계 7개 도시 최고급 매장 입성, 영국 ‘가디언’ ‘글래머’ 등 매체들의 집중 소개…. 보석 브랜드 ‘피버리쉬(FEVERISH)’의 이일정(28) 디자이너가 창업 1년 만에 거둔 성과들이다.

 지난해 6월 이씨는 지인과 함께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맨 먼저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로 갔다. 석 달 뒤엔 미국 할리우드와 뉴욕으로 갔다. 그는 인파로 붐비는 도시의 거리를 피버리쉬 제품을 온 몸에 착용한 채 걷고 또 걸었다. 스스로를 모델로 삼았다. 악어·박쥐 등 맹수류를 디자인한 액세서리를 걸고 다니는 동양 여성. 걸어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런 귀걸이를 어디서 살 수 있나” “혹시 팔 생각은 없나” 질문이 쏟아졌다. “내가 아는 백화점 바이어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서는 이도 있었다.

 이씨가 해외로 간 이유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튀는 걸 꺼리는 국내 소비자들은 이씨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의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패션 중심가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유명 명품 매장에 찾아가 “내가 만드는 제품이 이런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무모한 시도였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제품을 본 바이어들이 잇달아 계약을 맺고 주문을 했다. 과감하고 독특한 디자인에 패션 전문가들도 주목했다. 영국의 ‘가디언’과 ‘옵서버’ ‘글래머’ 등이 그의 작품을 소개했고, 최근엔 두바이의 유명 브랜드 소개 잡지인 ‘그라치아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를 인터뷰했다. 국내 유명 연예인들 사이에도 화제다. 걸 그룹 소녀시대 멤버 윤아·티파니·유리의 4집 앨범 재킷에도 등장했다.

 기업 해외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독일·영국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씨는 서양 아이들 사이에서 ‘못생긴 동양 아이’로 불렸다. 선화예중 시절엔 ‘창의성이 다소 부족한 학생’이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두각을 나타낸 것은 대학 시절이다. 런던 센트럴세인트마틴스대 주얼리디자인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재학 시절 우수 학생으로 뽑혀 루이뷔통 그룹과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대학 졸업 직후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진 뒤 그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2010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1년을 집안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3년의 공백, 창작을 향한 열정은 더 커졌어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남김없이, 대범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약한 사람이 착용하면 강해 보이고, 강한 사람이 하면 유머스러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올해 안에 15개국 20개 매장을 낼 계획인 그는 유명 보석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와 공동 프로젝트를 협의 중이다. 이씨는 “가수 싸이가 개성있는 춤과 노래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처럼, 디자인으로 한국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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