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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수거, 벽에 못 박는 일 … 남자의 쓸모가 얼마 안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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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여성이 참 알기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여성 입장에선 거꾸로겠지만). 다만 한 가지, 남자가 여자보다 둔감하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유머집에 나오는 ‘여자생활백서’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데리고 사는 그 얼간이를 통해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유머감각이란 당신이 남자에게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농담에 웃어주는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진지한 관계에 대한 남자의 정의는 ‘좋아, 오늘밤은 여기서 자고 가지’이다”…(『위트상식사전』).

 그나마 ‘여자의 평가를 좌우하는 얼간이’이던 남자 지위마저 이제 급격히 막을 내리는 듯하다. 일본에선 남편이 가사를 전담하는 ‘전업주부(專業主夫)’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됐다. 미국 저널리스트 해나 로진은 아예 가모장제(家母長制)라는 표현을 들고 나왔다. 로진의 저서 『남자의 종말』은 한국의 골드미스 현상을 자세히 다루면서 ‘한국 남성이 충격에 빠진 이유를 알 만하다. 한국 여성은 겨우 한 세대 만에 가정주부에서 정신없이 바쁜 수퍼우먼이 되었다’고 했다. 각종 통계가 모계사회로의 회귀를 예고한다. 지난해 사법시험 합격자 중 여성(41.7%) 비율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미 쓰레기 분리수거, 벽에 못 박는 일 따위를 빼면 남성이 비교우위인 힘쓸 일이 몇 남지 않았다. 운 좋게 약사나 의사 부인을 만나 낮에는 헬스클럽에서 몸 만들고, 저녁엔 약국·병원 문을 닫아주는 ‘셔터맨’이 현대 남성의 이상향이라는 말도 나돈다. 같은 남자인 최재천(이화여대) 교수마저 얄미울 만큼 냉정하게 진단한다. “남자들은 패닉에 빠질 것 없다. 여자들은 지난 1만 년 동안 겪어온 일이니까. 남성이 주도권을 잡은 건 현생인류 25만 년 역사에서 최근 1만 년밖에 안 된다.”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단단한 유리천장이 여성들 위에 둘러져 있다. 정몽준(새누리당) 의원 등이 공공부문 여성 임원을 앞으로 5년 내에 30%까지 늘리는 법안(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을 그제 발의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회사 여자 후배에게 법안에 대해 물어보니 의외로 미타히 여기는 기색이다. 가사·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먼저 아니냐, 밤샘과 폭탄주가 예사인 문화부터 고쳐야 한다, 실력이 아니라 할당제 덕에 임원이 된들 맘이 편하겠느냐 등.

 어찌 됐든 대세는 이미 판가름 난 게 아닐까 싶다. 2003년 노르웨이가 기업 여성이사 비율을 40%로 강제하는 법안을 세계 최초로 시행한 이래 유럽에선 할당제 도입이 꽤 활발하다. 현재 교육대학들이 입학정원에 남학생 할당제를 시행하는 것처럼, 앞으로 남성 임원을 몇% 이상으로 강제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필 아들만 둘인 게 마음에 걸린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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