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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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유럽」어느 나라에서 열린「세미나」에 부대표로 다녀온 분의 얘기를 듣고 느낀바가 많았다. 여기에 모였던 여러 나라 대표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인 후진국들이었으므로 우리나라의 형편이 과히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적자원이나 지능에 있어 오히려 앞선 감이 있어 퍽 낙관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와 동행한 우리정부의 보무자인 정 대표에게 있었다. 이분은 그 회의에서 필요한 자료도 준비하지 않은 데다가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서 무엇을 토의하고있는지 무슨 발언을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알아들으려는 진지한 태도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회의 중 내내 하품만 하고 회의가 끝나면「쇼핑」에만 눈이 발개지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모한 외유병의 심한 증세를 드러낸 예의 하나일 것이다.
이와 관련된 수년전의 신문기사가 기억난다. 태국「방콕」에서 열린 공중관제에 관한 국제모임에서였다. 저마다 의견을 발표하고 자국의 실정을 토로하는데 우리대표는 한마디의 발언이 없었다.
이때『너의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대표는 어리둥절한 채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이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대답할 수 없고 나라에 돌아가서 문의한 후 알려주겠다』고―. 이 말에 만장은 폭소의 바다로 화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얘기이다.
점점 수가 잦아지는 국제회의에 어떠한 대표를 보내며 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어떻게 이를 제시해야 하는가는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의 큰 관심사이다.
더구나 요새 새로 대두된 공산권과의 외교개방정책을 기하여 이 문제가 좀더 현실적인 해결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이대 대학원장·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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