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약 조제파문 환자단체 뿔났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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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A병원 앞. 길 옆에 늘어선 수십여 곳의 약국마다 환자들로 북쩍이고 있다. 어느 약국 앞에서 30대 중반의 여성이 아이와 함께 약국에 들어갔다. 하지만 곧 어두운 표정으로 약국 밖으로나왔다. 아이가 알약을 삼키지 못해 가루약으로 조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곧 옆에 있는 다른 약국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은 한 겨울에 4~5곳의 약국을 돌아다닌 끝에야 간신히 약을 지을 수 있었다.

▶"알약 못 먹는 것을 이상하게 취급…기분 나빠"

대형병원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 가루약 조제 거부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14일 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인근 문전약국에서 가루약 조제를 거부한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가루약은 알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소아나 중증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제방법이다. 하지만 일부 약국을 중심으로 가루약을 조제하면 다른 환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져 다른 약국으로 환자가 이동할 것을 우려해 '분쇄기가 고장났다'거나 '약이 모자르다'는 핑계를 대고 가루약 조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결국 이윤때문에 환자의 가루약 조제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소아나 중증환자는 알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전약국에서 가루약 조제를 거부하면 동네 약국으로 가야하고 여기서도 거부당하면 환자가 직접 알약을 갈아야 한다.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약 전문가인 약사에게 위생적으로 조제·관리되야 하지만 가루약 조제를 꺼리는 관행이 퍼져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를 둔 부모모임 커뮤니티에는 문전약국의 가루약 조제 거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적지 않다. 한 회원은 "약을 가루약으로 조제해달라고 했더니 약국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며 "알약을 못먹는 것을 이상하게 취급해 기분이 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처음에는 처방전 받아놓고 기다리라 하더니 30분쯤 후 부르더니 다른 약국에 가서 조제하라고 했다"며 "왜 기다리게 한 건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법인건 맞지만 사정 열악"

약사들도 문전약국의 조제거부 행위가 위법이란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현행 약사법 제 24조 1항에는 '약국에서 조제에 종사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는 조제 요구를 받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조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가루약 조제거부 관행은 명확하게 위법인 셈이다. 대한약사회 역시 이같은 점을 인정하고 있다. 약사회 관계자는 "단순히 제형변경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조제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가루약 조제거부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약사회는 "통상적으로 처방이 집중되는 공휴일 오전에는 가루약으로 제형을 변경할 때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신속한 조제가 힘들어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 소아 중증환자는 성인및 경증환자에 비해 조제시 업무량과 난이도가 높지만 비용요소가 적정하게 반영돼 있지 않는 점 역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도 부천시약사회가 2011년 11월 회원약국을 대상으로 한 ‘가루약 조제시 고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가루약 조제시 투입되는 시간은 4~10분이라는 응답이 60.4%로 가장 많았다. 상대적으로 알약을 조제할 때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건강상 또 가루약 조제시 발생하는 분진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약사도 97%에 달해 분진흡입기 사용 등 약국 환경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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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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