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수거업체 힘겨루기 … 쌓여가는 음식물쓰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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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노랗게 색이 바랜 배추 포기, 까맣게 변한 바나나, 어지럽게 널려있는 달걀 껍데기….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정1동 신시가지아파트 931동 앞 음식물쓰레기 수거함은 꾸역꾸역 넘쳐나온 음식물로 뒤덮여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10m가량 떨어진 곳에서까지 음식물 썩는 악취가 진동을 했다. 주민들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수거통 옆에 음식물 쓰레기를 두고 갔다. 경비원 이종외(59)씨는 “(수거 업체가) 1일부터 치우지 않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수거함 주변 바닥에 쌓인 것만 치워 갔다”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되는 대로 마대자루를 가져와 담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했다. 영등포구 영등포동 푸르지오아파트 216동 앞 수거통도 흉물스럽게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주민 김옥자(65)씨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갖고 나와도 둘 곳이 없어 최대한 버티다 일주일에 두 번만 갖고 나온다”며 “보기에도 안 좋고 냄새도 나는데, 빨리 처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곳곳이 음식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 구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엔 제때 처리되지 않은 음식물로 넘쳐나고 있다. 이처럼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 가는 이유는 각 구청과 쓰레기 처리업체 간의 힘겨루기 때문이다.

 이봉선 양천구 홍보정책과장은 “이달 말 계약이 만료되는 수거업체들이 재계약을 앞두고 t당 7만4000원이던 수거 비용을 12만7000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71.6% 인상된 금액이다.

이 과장은 “요구를 거절했더니 그때부터 매일 하던 수거를 2~3일에 한 번씩 한다”며 “태업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초구는 종전가(8만2200원)로 임시계약을 맺었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업체 요구대로 인상해주면 올 한 해만 35억원의 추가 예산이 들어간다”며 “용역을 의뢰해 적정가격을 알아본 뒤 추가협상을 하겠다고 일단 계약을 미뤘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초구가 수거업체에 지불한 비용은 45억원이었다. 반면 강서구는 업체 요구대로 12만7000원에 1개월 임시 계약을 맺었다. 강서구 측은 “당장 주민들이 쓰레기대란을 겪을까봐 임시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안 온 다른 구는 눈치만 보고 있다. 6월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마포구 측은 “전혀 올려주지 않을 수는 없어 다른 자치구의 상황을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거업체 측은 요금 인상 요구는 인정했지만 태업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음식물 수거가 늦어지는 것은 한파 때문이라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음식물이 수거통 안에서 꽁꽁 얼어 음식물이 잘 떨어져 나오지 않는 데다 딱딱한 음식물들 때문에 처리 기계가 고장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용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1월 1일부터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폐수를 바다에 투기할 수 없다”며 “육상에 처리하려면 처리 시설을 따로 만들거나 시설을 갖고 있는 업체에 의뢰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몇 배 올라간다”고 말했다.

 자치구 측은 서울시가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자치구의 한 관계자는 “처리비용 표준안이 없어 적정 비용을 알 수 없다”며 “정부나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영관 서울시 자원순환과장은 “아직 별다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유성운·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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