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문학의 강 건너는 작가 이윤기의 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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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늦게, 우리 조상들이 우리 이름으로 언표한 진리를, 우리 조상의 꿈과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 꿈과 진실이 다른 민족의 꿈과 진실과, 모습이 다를 뿐 사실은 하나라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안을 흐르던,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없던 강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나온 통로였으되, 한 번도 우리가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내 어머니의 자궁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신화는 우리의 자궁이자 문명의 자궁이다."(1백64~1백65쪽)

20여년 세월을 신화의 강, 그 꿈과 진실의 강을 건너고 있는 작가 이윤기의 변(辯) 이다.

신간 『이윤기가 건너는 강』은 말과 글, 사람과 삶, 신화와 문학에 대한 그런 끝없는 탐구의 여정을 정갈한 언어로 보여주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1993년부터 99년까지 수필 전문 월간지 '에세이'에 연재했던 글들과 일간지 등에 쓴 글 37꼭지가 담겨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실연한 여자친구에게 건넨 유치한 위로의 말("그 친구는 잊어버리고 나와 시작해보자") 이 그 여자친구에겐 더없이 정겹고 살가운 '인간의 결정적 진실'로 느껴졌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듣고 놀랐다며 말과 글을 도구삼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돌아보기도 하고, 한 표준어 사용주의자와 일간지를 통해 벌였던 논쟁 후 친구들과 '속닥하게' 한 잔 하고 싶었던 심정을 털어놓는다.

또 자칭 '우리말 지킴이'인 그이지만 청소년들의 인터넷 언어가 문법을 파괴하고 우리말을 해친다는 일반적인 걱정에 대해서는 기우라고 일축한다. 네오필리스트, 즉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인 청소년들이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잠시 범제(犯制) 욕구를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서울 명륜동 명륜다방에서 조용필의 "또라와요, 부싼흐앙에 끄리운 내 히영제여…"를 들으며 시작된 아내와의 연애담, 미국에 가있을 때 어머니 무덤이 있는 다복솔 덮인 작은 산등성이를 그리워하며 새벽술 마시던 기억 등에선 세월의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다양한 인간사를 잠시 낚아 올려본다.

역시 마무리는 저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노래'인 신화 이야기다.

현대인에게 신화가 갖는 의미, 문학과 작가의 의무에 대한 성찰의 글에서 전방에 선 야전군인과 같은 자세로 글쓰기에 임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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