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엔 왜 여성대통령 없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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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호 31면

이리나 코르군 경제학 박사·한국외대 연구교수

한국이 또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러시아를 포함해 대부분의 외국인이 한국을 가부장적 분위기와 전통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제한된 사회라고 여기는데 그런 결과가 나와 놀라움은 더 커졌다.

필자는 이번 대선 과정을 보면서 ‘러시아에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가능할 것도 같다. 외적 조건은 돼 있다. 소련 때부터 러시아에서는 여성들이 국가 경제활동과 행정에 적극 참여했다. 여자가 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여성을 이상하게 봤다. 특히 전후 국가 재건과 1960년대 산업발전 과정에 동참했던 내 할머니 세대는 ‘일하지 않는 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76년 통계를 보면 소련 노동자의 51.5%가 여성이었다. 영국 34%, 서독 33%, 미국 33%, 프랑스 31%, 일본 30% 정도였던 시기였다. 내가 어릴 때인 20여 년 전 일이지만 부모님이 직장 일로 퇴근이 늦어져 유치원 보모의 집에서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귀가한 적도 무척 많았다.

요즘 러시아에서도 전처럼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이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한 직업에서 일한다. 한국에선 드물지만 복잡한 기계를 조립하거나 수리하는 작업장에도 많다. 현재 일하는 러시아 여성의 비율은 56% 정도다. 어떤 분야는 남성보다 많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교육 분야 고급 전문가 중 여성은 201만 명이고, 남성은 52만9000명이다. 대학교수 대부분은 여성이다. 중간 교육 전문가의 경우 여성은 146만 명, 남성은 9만7000명으로 15배나 많다. 공무원의 70%도 여성이다. 그래서 2003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일하지 않는 여성이 많다는 점과 많은 여성이 기본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 놀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러시아 여성은 집안일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돌보는 훌륭한 가정주부여야 하고 매력적인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 또 그 뒤엔 여성들이 ‘집-직장-집’의 틀에 매이게 만드는 유리천장이 있다. 러시아 여성들은 대개 조직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있다. 남성들이 그런 테이블에 여성과 함께하는 것을 꺼린다. 여성을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러시아 남성들은 여성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준비도 안 돼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 여성 대통령 후보의 가장 큰 적은 여성들 자신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여성들은 여성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필자도 현재 같은 상황이라면 여성 후보에게 표를 안 줄 것 같다. 왜 그럴까. 여성 대통령이 러시아라는 저 거대한 국가를 잘 통치할 수 있을지, 정부 요직을 꿰차고 있는 남성들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또 주변국 문제로 복잡한 러시아의 거대 군부를 잘 관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의 여성 정치인은 주로 야권 인사라는 점도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그들이 서구의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여성의 일이 아니다’는 인식이 여전히 살아 있고, 조만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지만 정치 참여는 제한된다는 러시아 패러독스는 한국의 대선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큰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에선 여성의 사회활동 전통이 길지 않은데도 여성 대통령을 낳았고, 여성들에게 자부심을 주지 않았는가. 한국에선 지난 60년에 걸쳐 정치 엘리트층이 형성됐지만 러시아에선 그런 과정이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게, 철학자 솔로비요프가 ‘여성적 영혼을 가진 나라’라고 칭한 러시아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것보다는 더 쉽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국제경제 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 연구소의 연구 교수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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