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백의종군을 자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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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단어 중에는 자모가 비슷하고 소리까지 유사해서 뜻이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자처(自處)와 자청(自請)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사실 한자의 뜻을 따져보면 그렇게 혼동할 만한 표현은 아닌데도 자주 잘못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총선·대선을 거치면서 쏟아져 나온 뉴스라든지 블로그 글 중에도 이런 잘못이 많다.

 ‘자처’는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여겨서 그렇게 처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애국자를 자처한다면 그는 자신을 애국자로 여기고 스스로 애국자인 양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청’은 어떤 일에 나서기를 스스로 청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자청해서 했다면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총선 기간에 백의종군을 자처하며 수도권 후보 지원 활동을 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 문장에서 자처는 자청으로 해야 뜻이 통한다. 그가 선거 기간에 스스로 아무런 직책 없이 묵묵히 일했다는 것이지 스스로를 ‘백의종군’으로 여긴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20대 젊은이들의 활약이 커지고 있다.” “특히 그는 당선이 확정적인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하고 강남이라는 가시밭길을 자처해 갈채를 받았다.” 이 예문들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자처가 아니라 자청이 옳다.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최고 일꾼을 자처하며 열띤 경쟁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에스파냐는 신교 용인을 거부했다” 등에서는 스스로를 ‘최고 일꾼’ ‘수호자’라 여기는 것이므로 자처가 제대로 쓰였다.

 자처나 자청 외의 다른 단어를 써야 할 사례들도 있다. “강원 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교육문제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자처하고 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금융당국이 뒷북 대응으로 위기를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이 예문들에서는 어떤 결과를 스스로 끌어들이거나 불러들였다는 것이므로 자처가 아니라 자초(自招)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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