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창업현장] 와인전문점 변형완 사장

"광천의 새우젓, 순창의 고추장, 순천의 고들빼기…. 그 지방의 토양과 기후가 특산품을 결정하듯 와인도 포도 종류와 산지가 맛과 품격의 차이를 낳습니다."

18일 저녁 경기도 분당의 와인나라아울렛 서현점. 변형완(51)사장의 '유럽 와인 라벨 읽기' 강좌가 한창이다. 주부.대학생.회사원.중소기업 사장 등 수강생 층도 다양하다. 변 사장의 강의 내용을 수첩에 적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재치있는 그의 입담에 중간 중간 박장대소도 터져 나온다.

변 사장은 소믈리에도, 와인 수입업자 출신도 아니다. 불과 2년 전 만해도 제일모직 상무였던 그가 이 업종을 택한 건 '즐겁게 일할 거리를 찾고 싶어서' 였다. 2003년 명예퇴직한 뒤 원단을 수입하는 작은 회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몇 년이나 더 버틸까' 하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제일 먼저 와인전문점이 떠올랐다. 마침 외국 바이어들과 간간이 마셔본 와인에 매료돼 와인 아카데미를 다니던 중이었다. 조금만 차별화해도 당시 우후죽순 들어서던 와인전문점 중에서 최고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먼저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 호주.뉴질랜드의 와인 양조장(와이너리)을 10곳 가까이 둘러보며 와인과 친해졌다. 직접 수입하는 것은 벅찰 것 같아 와인은 프랜차이즈를 통해 공급받기로 했다.

매장 자리는 10년 넘게 살아온 경기도 분당에서 물색했다. 일부러 지하철 서현역에서 2㎞나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1층을 빌렸다.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고 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역세권에 와인전문점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소비자들의 심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와인을 사러 온 손님이나 강좌를 들으러 온 사람 모두 "차분히 와인 문화를 즐길 수 있어 좋다"며 극찬했다.

개장 한 달 전부터 문을 연 홈페이지(www.freechal.com/winestudy)도 성공적이었다. 개장을 앞두고 잠이 오지 않아 한 두건씩 올렸던 '와인 이야기'가 네티즌 사이에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삼성전자 사내 웹진 운영자의 부탁으로 6개월간 연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골 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건 '와인 강좌'였다. 본사에 요청, 일주일에 세번 강좌를 열되 하루는 본사 소믈리에가 고급 과정을, 이틀은 자신이 초.중급 과정을 맡았다. 처음엔 용어가 틀려 망신도 당했지만 입시공부하듯 와인 관련 서적을 섭렵했다. 인근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공동 와인 이벤트'를 기획하고, 수강생이었던 심장전문의와 함께 '와인과 건강'을 주제로 강좌도 열었다.

강좌에 쓸 와인은 결코 아끼지 않았다. 15만원이 넘는 이탈리아산 '티냐넬로' 등도 수시로 내놨다. 6회 과정에 1인당 10만원의 수강료를 받았지만 대부분 경비로 나갔다. 지난해 매출은 5억원. 그중 15% 이상이 순수익이다. '창업 첫해에 3억원의 매출만 올려도 잘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올해는 매출 7억~8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제 웬만한 일은 직원에게 맡기고 카운터에 물러 앉을 법도 하지만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명찰까지 단 채 손님을 맞는다. 매주 월요일 중앙대 사회교육원에서 와인마스터 과정도 듣고 있다. 그래도 힘든 줄 모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변 사장은 "퇴직 후 창업은 평생할 것이므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택해야 한다"며 "특히 와인전문점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 와인 문화를 이웃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창업 비용은 얼마=30평 규모의 점포는 임대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 200만원. 새로 지은 건물이라 다소 비싼 편이다. 이 중 10평 남짓한 공간에 강의실을 만들었다. 프랜차이즈에 가입하면서 보증금 1000만원에 가맹비 1000만원을 냈다. 인테리어 비용은 5000만원, 처음 와인을 구입하는데 7000만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