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계 일류 제품도 국내선 "기죽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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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에선 영 딴판이다. 점유율이 고작 11%대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시장 1위인 국산 PDA 셀빅의 점유율은 40%가 넘는다.

팜PDA 수입업체인 코오롱정보통신의 이춘복 팀장은 "팜PDA에 쓰인 '팜 운영체제(OS) '가 윈도OS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시장을 휩쓸면서도 유독 한국시장에서는 맥을 못추는 초일류 제품이 적지 않다.

국내 소비자들의 독특한 취향에 맞는 제품을 제때 내놓지 못하는 데다, 애프터서비스(AS) 도 국내 업체에 뒤지기 때문이다.

◇ 소비자 기호 못따르고=세계 휴대폰 1위 업체 노키아는 지난 7월 KTF(016) 와 SK신세기통신(017) 에 단말기를 공급하면서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판매량은 모두 4만여대, 시장점유율이 4%대에 불과하다.

값이 비싼데다 기능도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과 안맞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액정화면이 두개 달린 듀얼폴더형을 선호하지만 노키아 휴대폰은 싱글폴더형이다.

양문형 냉장고 세계 최강인 월풀과 GE제품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LG 등 국산제품의 점유율은 90%를 넘는다. 한국 음식이 냄새가 많이 나는 점을 감안해 국산 냉장고는 냄새제거 기능을 강화했지만, 미국 제품은 음식 냄새를 없애지 못해 주부들로부터 외면 당했다.

이와 달리 작고 가벼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춘 일본 소니와 JVC의 캠코더.디지털카메라 등은 국내 시장을 휩쓸고 있다.

◇ 애프터서비스도 미흡=올 6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외국산 PC는 20만대 안팎. 세계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컴팩과 HP제품의 점유율이 불과 1~2.5%수준이다.AS망이 부족, 국내 소비자들이 외면한 때문이다.

인텔코리아도 지난 7월 MP3플레이어를 출시했지만 유통대리점이 10여개에 불과해 판매량은 미미하다. 노키아의 직영 AS점 역시 3개에 불과하고 대행하는 곳을 합해도 33개에 그친다. 국내 업체들에 비하면 3분의1도 안되는 숫자다.

삼보컴퓨터의 신필호 부장은 "외국기업은 AS 투자가 부족해 고객관리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아=외국계 기업 관계자들은 "한국이 아시아의 주요 시장인 만큼 포기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정보기술 수준이 높아 국내에서의 성공 여부가 아시아시장 공략의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시장만을 겨냥해 따로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텔의 오미례 부서장은 "AS망 구축 등 투자에 앞서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을 충분히 살피는 것이 전략"이라며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외국기업들의 투자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수석연구원은 "국산제품들이 시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성능면에서 세계 초일류 제품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자본력이 앞선 외국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한다면 국내시장도 장담할 수 없는 만큼, 국내기업도 기술개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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