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으로만 느낄 수 없는 나물 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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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포근한 봄볕이 내리쬐는 논두렁 밭두둑에서 나물을 캐느라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큰아기들. 배부르고 한가한 사람들이 이런 광경을 상상한다면 시정이라도 느끼겠지만 우리는 밥에 보태먹기 위해서 또는 죽을 끓여먹기 위해서 쑥을 캐고 물구를 뽑는다.
한 잎 한 뿌리라도 더 캐서 바구니를 채우려고 정신없이 나물을 쫓아다니다 보면 눈앞에서 무수한 불티가 어지럽게 맴돌며 아찔해서 쓰러질 것만 같다.
꽃같이 피어날 나이에 샛노란 얼굴이며 누더기 같은 치마저고리가 오히려 어울리는 나 「딸그만」(나의 별명)은 밉고 불행하다.
서울이 좋다더라고 밤새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달아나 버린 벗들은 나보다 예뻐지고 행복해졌을까? 나물을 캐면서 갓난아기 손가락같이 연약한 보리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웃거름(요소비료)을 못 먹여 준 탓으로 보리는 노상 그마마한 크기로 자랄 줄을 모른다.
배급비료 반부대값 4백20원을 마련하지 못해서 늙으신 아버지의 이마엔 주름살이 하나 더 늘고…작년엔 외상비료도 나오고 암거래 비료까지 사서 뿌렸는데…우리는 왜 해마다 갈수록 가난해질까? <조재숙·전북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새터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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