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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구조 늦어 희생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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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목포=정일수·김정찬·김남술기자】15일 영시50분 해경868경비정은 일본상선에 들이 받쳐 희생된 우리어부 5명과 생환자 4명을 싣고 목포항에 돌아왔다. 선장 김재봉(74·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씨만 실종된 채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 죽은 어부들은 15일 아침 6시 유가족의 호곡 속에 함상에서 입관, 말없는 귀향길에 오른다. 우리어선 영양호(SCF29306·20마력·선적 속초)는 지난 3월24일 10명의 선원을 태우고 무안군 망운면 압청포를 출발, 흑산도 근해에 조기잡이 나갔다 13일 0시45분 일본상선 「제5와꼬마루」에 들이 받쳐 선체가 완전파손, 이와 같은 변을 당한 것이다.
생환자 정흥건(47·속초교동27반)씨는 일본배의 구조작업이 30분이나 늦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를 냈다고 말했다.
13일 한·일 공동으로 현장조사를 마치고 온 해경868경비정장 박현구(39) 경감 일본상선 「와꼬마루」의 선장 「미꾸니·히데끼」씨가 『선장이 다수의 어선이 조업을 하고 있는데도 항해주의를 소홀히 했다는 것』을 확인한 각서를 받았다고 그 각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 해난사건은 공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국제해난심판위원회에 회부, 우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다.

<사건경위>
흑산도 서북방 45「마일」 북위 35도10분, 동경 1백24도34분 해상(공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우리 어부들은 12일 밤10시쯤부터 자기시작, 피곤해서 모두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차기에 눈을 떠보니 이미 물은 목 위로 오르고 있었다.
3분 동안이나 바다에서 몸부림치다 파손된 뱃전을 쥐고 겨우 산사람이 4명.
『우리는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치며 보니 일본배가 1백「미터」가량의 거리에 있었다. 그 배에 구조된 것이 새벽 3시였다. 일본 배의 구조작업은 30분이 늦었다. 누가 어떻게 됐는지 몰랐다. 일본어선들은 구조한 것이 큰 선심인양 「고기잡이배가 옆에 많아서 그냥 갈 것인데 구조해 주었다」고 뽐냈다. 이렇게 생명을 건진 우리 어부들은 13일 하오 1시 인계될 때까지 일본상선에 머물렀다』(생환자 정흥건씨의 말)
『그 일본상선은 10「노트」의 속력으로 중공 천진항을 출항, 동경을 향하던 중 전기지점에서 충격을 받고 기관을 정지, 부근을 비추어보고 비로소 우리 배를 들이받았다는 걸 알고 구조작업을 시작했으며 본국에 연락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 배는 불을 켜놓고 있었으며 안개도 끼지 않은 기상상태였다. 13일 하오3시쯤 일본순시선2척이 현장에 도착했으며 우리해경 86l, 868경비정은 그보다 앞서 현장에 나가 공동조사를 하고 시체수색을 했다. (868정장 박 경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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