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담]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한국분소를 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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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한국 분소가 올 하반기 문을 연다. 노벨상 수상자를 8명 배출한 파스퇴르 연구소.

그 한국 분소에서는 어떤 공동 연구가 이뤄질까.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러 최근 한국에 온 필립 쿠릴스키 파스퇴르 연구소장과 채영복 과학기술부 장관이 한국 분소에 거는 기대와 세계 생명공학의 흐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편집자)

▶채영복 장관=한국 분소 설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점,감사한다.

▶쿠릴스키 소장=분소 설립이 대단히 빨리 진행되는 것에 놀랐다. 지난해 9월 장관께서 파스퇴르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분소 설치 논의를 시작했는데 벌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러 한국에 오게 됐다.생명과학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의가 대단한 것 같다.

▶蔡=파스퇴르 연구소는 '인류에 대한 기여'를 연구의 지상 목표로 삼고 있다고 들었다. 동시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는 등 세계 최고 연구기관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 분소를 세워 프랑스와 한국의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함으로써 한국의 생명과학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쿠릴스키=파스퇴르 연구소의 정신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최고 수준의 과학''휴머니즘''국제협력'이다.우리는 1887년 설립된 뒤 꾸준히 국제협력을 추진했다. 처음 광견병 백신을 발견하고서 전 세계에 연구원을 파견해 백신 기술을 전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연구 역량의 50% 이상을 전염병 연구에 기울이고 있다. 전염병은 국경이 없다. 과학도 국경을 넘어 협력해야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다.

▶蔡=미국 프린스턴대학의 교수였던 도널드 스톡스는 과학 연구를 몇 가지로 분류했다. 학문적 가치는 높으나 응용성은 작은 연구, 응용성은 대단하지만 학문으로서는 별로인 에디슨식 연구 등이다. 그는 파스퇴르식 연구가 학문적 가치와, 응용을 통해 인류에 이바지하는 것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쿠릴스키=루이 파스퇴르는 "기초와 응용 연구가 따로 있지 않으며,오직 '연구'라는 한 가지만 존재한다"고 했다.기초가 나무라면 응용은 꽃이다.나무를 키워 꽃이 피게 하는 식으로 우리는 기초부터 시작해 응용까지를 얻어내는 연구를 해왔다.남의 기초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응용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蔡=우리가 한국 분소의 모토로 삼는 것도 '유전자에서 신약까지'이다.기초인 유전자 연구에서 시작해 최종 산물인 신약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연구하겠다는 것이다.이렇게 기초에서 응용까지를 망라하는 데 있어 파스퇴르의 축적된 경험을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

▶쿠릴스키=한국 분소의 미래와 성공에 우리도 관심이 많다.'분소'라지만 한국의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한국 연구소다.이곳이 세계적인 연구소로 자리잡으려면 기초 연구에 주력해야 한다. 기초 연구는 큰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 준다. 파스퇴르 연구소 연구비의 43%는 기초 연구에 따른 특허 등에서 나온다. 우리가 기초 연구에 매진하지 않았다면 높은 수익을 올려 다시 연구에 투자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蔡=한국은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유전자 정보(바이오 인포매틱스) 분야,단백질의 생성과 기능을 밝히는 연구(프로테오믹스), 약품 합성에 필수인 화학 등이 강하다. 앞으로도 정부가 이 분야를 중점 지원할 계획이다. 한국 분소가 우리의 장점을 십분 살리는 공동 연구를 하면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쿠릴스키=그렇다. 한국은 또 세포 안에서 각종 생체 신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규명하는 분야도 강하다. 외국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좋은 업적을 낸 인력도 많다. 또 요즘 생명과학은 수학.물리학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는데 이 분야도 한국에 강점이 있다.파스퇴르 연구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한국의 장점들을 잘 엮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蔡=생명과학은 바이오 산업을 통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국 정부가 생명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한해 2백70억달러(약 32조원)를 바이오 연구에 쏟아 붓고, 일본도 1천개 바이오 기업을 만든다는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쿠릴스키=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세금 제도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프랑스지만 최근에는 바이오 벤처에 세금 혜택을 주는 등 바이오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바이오 산업을 일군다고 응용 분야에만 신경을 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파스퇴르 연구소에서는 평균적으로 두 달에 하나씩 바이오 벤처가 생기는데, 거의 대부분이 기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蔡=최근 라엘리안이라는 종교단체의 자회사 클로네이드가 복제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사실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 인간 복제뿐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 등도 영향을 받게 됐다. 한국에서는 일단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고, 차차 난치병 치료 연구에 필요한 줄기세포 및 기타 복제 연구는 가능케 하는 쪽으로 법안을 추진하려 한다.

▶쿠릴스키=프랑스는 1982년 세계 최초로 생명윤리법을 만들었다.인간 복제는 금지했지만 줄기세포 연구 등은 허용하고 있다.줄기세포 연구도 막으려는 미국보다 너그러운 편이다.과학의 발전을 위해 줄기세포 연구는 필요하다고 본다.파스퇴르 연구소에는 줄기세포 연구 팀이 5개쯤 있는데,전부 합쳐 조직을 강화하려 한다.

▶蔡=파스퇴르 연구소와 한국이 손잡고 '파스퇴르 코리아'가 탄생하게 됐다.이를 통해 프랑스.한국의 생명과학 분야 연구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양국의 경제 발전은 물론 세계 인류 복지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정리=권혁주.심재우 기자,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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