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원외유 심사를 외부 손에 맡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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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 12월 대선 때 여야는 마치 세례를 받는 신자처럼 개혁적인 국회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공약했다. 세례수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국민은 위약을 목격했다. 예산은 막판에 해를 넘겨 졸속으로 처리됐고 수 시간 후 핵심 예결위원 9인이 중남미·아프리카 외유에 나섰다. 비판이 쏟아지자 9인 중 3인이 지난 일요일 새벽 죄인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이들은 출국 시점이 불행했을 뿐이다. 지금도 의원 수십 명이 전 세계로 흩어져 ‘동계 외유’를 즐기고 있다. 이번 외유제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올해 ‘의원 해외여행’을 위한 예산은 80여억원이다. 국회의장단 외교, 100여 개국과 결성한 의원외교협의회 활동, 국제의원연맹(IPU)을 비롯한 국제회의 참가, 그리고 상임위별로 진행되는 해외여행 등이다. 임기 4년 동안 의원들은 주로 이 4개의 경로를 통해 국회 예산으로 외국에 간다. 이런 저런 기회를 활용하면 1년에 두 번 정도 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의원의 국비 해외여행이 외유로 불리는 건 공무(公務) 부담은 작고 기타 편의와 대접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고 비행기에 오르면 최소한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는다. 방문국에 도착하면 주재공관으로부터 차량과 안내 등 각종 편의를 제공받는다. 외국 정부·의회 방문이나 회의 참석 같은 공무가 있지만 빈 스케줄을 활용하면 관광이나 기타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과거엔 해외 여행을 계기로 정부부처나 관련 기관·업체, 계파 보스 등으로부터 두툼한 ‘달러’를 받기도 했다. 출장보고서 작성 같은 업무는 국회 사무처에서 처리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외유’를 개혁하는 일은 효용과 비용을 철저하게 따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의장단을 포함해 꼭 의원들이 가야 하는 의원외교나 국가 위상에 걸맞은 국제회의와 의원 교류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횟수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일반인의 해외여행 기회가 적었던 1960~80년대에는 나랏돈을 들여서라도 의원들을 외국에 보내 견문을 넓혀주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정은 없어졌다.

 필요와 불필요는 누가 구분할 것인가. 세비나 외유 같은 ‘의원들의 이익’ 문제는 그들의 손에 맡겨서는 개혁이 되지 않는다. 이번 예산안에서도 세비 삭감이나 연금축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의원들의 징계를 외부인사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것처럼 세비나 외유 문제는 독립적인 심사기구를 거칠 필요가 있다. 의장 산하에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세비 조정과 해외출장 계획을 심사하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G20 의장국을 거쳤고 매년 수많은 국제회의를 유치한다. 이런 나라에서 ‘의원 외유’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는 자체가 국회의 수치다. 외부의 손에 맡기는 과감한 방법으로 국회는 이런 구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