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이공」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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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월남이 어디로 갈 것인가-이것은 불교 측에서 결정한다는 것이「사이공」시민들의 표정이다. 1천4백만 월남국민의 85%를 거느리고 있다고 호통치는 불교는 월남의「보이지 않는 정부」로서 군림해왔으며 불교 측에서 반기를 드는 한 그 정권은 운명을 다했다는 월남의 특수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월남정정이 급속도로 악화된 직접적인 동기가 온건파로 알려진 남부불교지도자「딕·탐·차우」고승이「티」장군해임 후 던진 성명 한 마디로 인해 연유된 것이라면 불교의 영향력을 짐작할만한 일이다.
지난 3월13일「차우」승은「키」수상이 정권을 인수한 후 처음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헌법을 제정하고 조속히 총선거를 실시하여 민정으로 이양할 것과 현 군사정권의 지도자들은 군 본연의 임무에 돌아갈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 성명이 일단 발표되자「다낭」의 소요가 점차 거센 반정부폭동으로 변하고「사이공」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3월16일「키」수상은 즉각 기자회견을 통해「차우」승의 요구가『애국적인 사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아첨(?)을 한 후 그의 요구가 적절히 고려될 것이라고 약속하여 불교 측을 무마하려고 애를 썼다.
「사이공」시민들은 애당초「키」수상이 정권을 인수했을 때부터 불교 측의 감정을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해왔었으나「호놀룰루」회담이후 강력한 미국의 뒷받침을 확인하고 나서 중국인 부정축재자를 총살시키고「달라트」의 부정세리를 적발, 구속하는 등 일련의 강경책을 쓴 것이 그만 불교 측의 성미를 건드리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있다.
유혈 폭동화한「사이공」「데모」도 실상 따지고 보면 불교도들의「데모」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 그러나 종전과 달리 반미적인 색채를 노골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반미감정은 그 뿌리를 캐보면 상당히 오래 전부터「사이공」, 아니 전월남인에게 심어진 것이다.
전쟁의 과중에서 허덕여온 월남이라 무수한「데마」가 떠도는 사회인지라 그럴법한 일이긴 하지만「사이공」시민들은 격심한 정권쟁탈전의 뒤에는 항상 미국 CIA의 손길이 뻗치고있다고 믿고있으며「아메리칸」은「아시아」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모든 문제를「달러」로만 해결하려 든다고 공공연히 비난하고 있다. 「사이공」의 좋은 집, 좋은 차, 월남인의 순수한 혈액이「아메리칸」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월남인의 악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미국의 원조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이민족에게 억압만 당하고 살아왔다는 피해망상증과 철저하게 부패한 정부 밑에서 생활해온 정권불신벽이 고질병으로 굳었고 이 병의 처방법이 불교라는 종교로 귀일한 이 땅의 묘한 생리를 헤쳐볼 때 월남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데모」를 하는 군중을 붙들고「키」정권이 물러선 다음에는 누가 정권을 담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우리 스님이 나쁘다면 그것은 무너뜨려야 한다』라는「비전」없는 행동을 용감하게 하고 있는 것이 월남의 현실이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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