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실적 내고도 임원 승진 줄여 … 널뛰기 인사 '이제 그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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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22면

정의선 부회장(왼쪽), 김용환 기획총괄 부회장.

현대자동차 그룹 임원 인사가 차분해졌다.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자주 보여주던 현대차가 지난달 28일 정기인사에서는 변화 폭을 최대한 자제했다. 지난해 사상 최고 수준의 경영실적을 내고도 그룹 임원 승진자는 379명으로 전년(465명)보다 되레 19% 줄었다.
이번 인사에서는 공격경영 못지않게 조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그룹 2인자이자 안살림을 맡은 김용환(56) 기획총괄 부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그들이다. 김 부회장은 정 회장 부자와 의사소통이 가장 원활한 전문경영인으로 해외 인재 스카우트 작업 등에서 정 부회장과 호흡을 맞춰왔다. 그는 2007년 사장 승진 후 김승년(2010년 작고) 구매총괄본부장과 함께 정 회장의 최측근 인물이었다. 정 회장은 통상 복수의 최측근 인사를 두고 다방면의 보고 채널을 활용해 적재적소 인사에 힘써왔다.

현대차 그룹, 차분해진 연말 임원인사

"김용환·정의선 부회장 의중 반영 공격경영 와중에도 조직 안정성 중시 경기침체·수요감소에 핵심 역량 비축"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각각 사상 최대 판매실적을 거뒀다. 현대차는 국내 67만 대, 해외 373만 대 등 440만 대를 팔아 전년 대비 9% 판매 신장률을 기록했다. 기아차는 내수 48만 대, 해외 224만 대로 총 272만 대를 팔아 7% 성장했다. 두 회사를 합하면 712만 대로 세계 5위다. 연 900만 대 이상인 도요타·GM, 880만 대 정도인 폴크스바겐 그룹에 이어 760만 대로 추정되는 르노-닛산을 바싹 추격하고 있다. 영업이익도 현대·기아차를 합쳐 15조원에 달한다. 그룹 전체로 20조원을 넘어 역대 최고치가 예상된다. 승진 잔치를 벌일 만도 한데 예상을 뒤엎었다. 실망한 고참 부장도 많았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현대차 측은 “올해는글로벌 저성장 기조 속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내실을 다지고 디자인·연구개발(R&D) 쪽 힘을 더욱 비축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부장에서 이사대우로 승진한 사람. 속칭 ‘재계의 별’을 단 사람은 지난해 187명에서 138명으로 크게 줄었다. 실적 보상 성격보다 올해 경영환경 악화를 준비하는 보수적 인사라는 것이다.
덕분에 기존 중역 중에는 예년보다 자리를 더 오래 지키는 사람이 늘었다. 현대차 그룹 임원 인사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적잖았다. 연말 정기인사와 관계없이 임원들이 하루아침에 회사를 떠나는 일이 다른 그룹보다 잦았다. 실장급 상무는 물론 본부장급 부사장·전무, 심지어 사장·부회장급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실적 부진이나 경영 실책이 주요인이었지만 본인이 영문을 잘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종잡기힘든 널뛰기 인사”라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이번 인사가 이러한 회사 안팎의 시각을 반영했다는 해석도 있다. 퇴직한 현대차그룹 사장은 “실적과 관계없이 전체 500여 명의 임원 풀은 한정돼 있다. 승진 잔치는 그만큼 내보내야 가능하다. 경영성과가 좋았다고 승진을 많이 시키면 쫓겨나는 임원이 많아지기 때문에 차분한 인사를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1년 전인 2011년 말 대폭 승진 인사가 그런 부작용을 빚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인사에는 김 부회장의 의중을 잘 읽는 측근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해외 생활을 오래한 김 부회장이 유럽법인장 시절 가까이 일한 사람들이다. 부사장으로 승진한 김걸 기획조정실 전무가 대표적 사례다. 2007년 이사대우 승진 이후 거의 매년 한 단계씩 올랐다. 부사장 승진과 함께 현대차 해외영업 본부장을 맡은 임탁욱 유럽법인장(전무), 해외법인에서 전무로 승진한 임병권·김성환 상무도 김 부회장이 유럽법인 때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자동차 발전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온 박홍재 자동차산업연구소장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조만간 단행될 부회장·사장 보임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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