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운전사 아저씨들 너무나 사나워요"|공덕 국민학교 강혜숙 양의 호소|비정의 윤화로 "짝"을 잃고 슬픈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잇달아 일어나는 어린이들 교통 사고는 어린이들의 조그마한 가슴을 울려 『어린이를 먼저 태워주셔요』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어린이들을 거리에까지 나서게 했으나 어린이들의 절실한 호소도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무시되어 그 뒤에도 여러 곳에서 등교길의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교통사고는 그치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31일 아침에는 서울 마포구 공덕 국민학교 6년 주영순 (12) 양이 학교에 가다가 바로 학교 앞 건널목에서 마구 달려드는 합승에 치여 책가방을 손에 든 채 목숨을 잃었고 같은 날 상오8시30분쯤에는 나이 어린 오빠 이용호 (9·우신 국민교 3년)군이 동생 주희 (7·우신 국민교 1년) 양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함께 길을 건너가다가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등교길이나 하교길의 어린이들이 너무나 자주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빼앗기는 교통사고에 대해서 어린이들은 조그만 가슴을 치며 안타까와 하고 있는데 학교 앞 건널목에서 목숨을 잃은 주영순 양과 한 책상에서 3년을 같이 공부해 온 강혜숙 (12·서울 공덕 국민학교 6년8 반) 양은 동무를 잃은 슬픔에 못 이겨 「운전사 아저씨들에게 드리는 글」을 써서 2일 상오 본사로 보내왔다.
강양은 같은 반의 동무들과 주양이 앉아 공부하던 빈 책상에 채 피지 않은 복숭아 꽃가지를 놓아두고 동무를 잃은 슬픔을 안고 공부하고 있었다. 연필로 양면 괘지에 또박또박 박아 쓴 강양의 글에는 동무의 목숨을 앗은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을 보살펴 달라고 절절이 호소하고 자동차를 보면 무섭다고 어린 마음이 떨고 있다.
▲운전사 강창식 (47·서울 영1950호「버스」)씨의 말=교통 사고로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 우리 운전사들의 가슴이 더 아프다. 나에게도 영순 양과 같은 딸이 있다. 운전사들도 더 조심하고 승객들도 어린이들은 특별히 보살펴 줘야겠다.

<운전사 아저씨들에게 드리는 글>
우리 나라의 여러 운전사 아저씨들에게 간절한 부탁을 드립니다. 어린이들을 보호해주셔요.
우리 나라 운전사 아저씨들은 너무나 성급하고 너무나 사나우신가봐요. 좋은 길, 골목길을 아랑곳없이 마구 달러오는 합승이나 버스를 보면 정말 무섭습니다. 동무하고 손잡고 정다운 등교길에 나선 우리반 「영순이」는 마구 달리던 합승에 치여 다시 못올 머나먼 죽음의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영순이」의 생글생글 웃는 모습도, 비둘기처럼 뛰어 놀던 그 모습도 이젠 영영 우리반 교실에선 찾아볼 길 없군요. 동무들은 모두 살아남아 가엾게 죽어간 「영순이」의 명복을 빌고 있는데 「영순이」의 모습만은 보이지 않으니 우리 「영순이」의 목숨, 모습을 누가 빼앗아 가셨읍니까.
어린이가 지나가면 차를 멈춰주셔요. 외국 사람들은 사람이 지나가면 차를 멈춘다고 하던데요.
우리 나라 운전사 아저씨들은 너무나 냉정한가봐요. 원망스럽습니다. 학교 앞을 지날 때면 속도를 늦춰주셔요.
우리반 「영순이」를 잃은 슬픔에 못 이겨 이 글을 드리오니 부디 우리 어린이들을 잘 보살펴주셔요. 그래야만 죽어간 「영순이」도 눈을 감을 것입니다.
1966년4월1일 서울 공덕 국민학교
6학년8반 강혜숙 올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