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임 보름 만에 세 번 말 바꾼 교육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내 공약은 중1 시험을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중1 때 진로탐색 과정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27일 문용린 신임 서울시교육감이 한국교총을 찾아가 한 말이다. 하지만 예비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11월 그의 발언은 달랐다. “중학교 1학년 중간·기말고사를 없애겠다. 시험을 보지 않고도 기초학력은 얼마든지 체크할 수 있다”고 공약했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중학교 1학년 ‘시험 없는 학교’ 운영”이라고 명시돼 있다. “중1을 진로탐색 학년으로 지정해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의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도 적혀 있다. 한 달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다.

 3일로 취임 보름을 맞는 문 교육감의 말 바꾸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선거기간 유권자들에게 “서울 교육을 친북좌파 세력으로부터 지켜달라”며 전교조를 공격했다. 지난해 12월 19일 당선이 확정된 뒤에도 “그동안 곽노현 전 교육감의 전교조식 정책이 학교현장을 혼란에 빠트렸다”고 했다. 곽 전 교육감의 핵심 정책이었던 혁신학교에 대해선 “전교조 귀족학교”라고 비판하며 “당선되면 추가 지정을 유보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 교육감은 얼마 전 전교조 서울지부를 찾아가 “내가 선거과정에서 후보 간 차별화를 위해 (전교조에 대해) 험한 말도 좀 하고 그랬다. 마음 아프게 한 건 사과하겠다”고 했다. 지정을 보류하겠다던 혁신학교는 조만간 6곳이 추가 지정될 방침이다. 문 교육감이 시의회 첫 정책질의에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감은 책임이 무거운 자리다. 유·초·중·고생 126만 명의 교육을 책임지고 예산 7조3600억원(올해 기준)을 집행한다. 무엇보다 서울의 모든 교사(7만9485명)를 대표하는 교육 수장(首長)이다.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어린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문 교육감은 취임 초부터 약속을 세 번이나 뒤집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문 교육감의 한 측근은 이런 말 바꾸기를 ‘대통합 행보’라고 해명했다. 선거기간에 생긴 상처를 보듬고 교사와 학생을 하나로 모으려면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상대 진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다르다. 교육감이 자신의 교육정책 방향을 수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면밀한 검토를 거친 뒤에라야 온당하다.

 문 교육감은 2일 신년사에서 “교육주체들 간의 갈등과 불신, 보수와 진보 이념의 벽을 넘어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겠다”고 했다. 그 출발점은 교육감직의 중요성과 말의 무게를 깨닫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한 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