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회 파행에 서민 생계 벼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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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사는 지체장애 4급 박수영(가명·49)씨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새해에 보다 나은 삶을 일궈보려던 박씨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메시지였다. 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성남시 공공근로사업이 중단됐으니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통보였다. 박씨는 2011년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뒤 공공근로사업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가로정비를 하고 받는 월 70만원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박씨는 “생활이 빠듯해 거의 라면으로 허기만 채울 때가 많다”며 “저축한 돈이 바닥나기 전에 공공근로를 나가지 못하면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성남시 의회의 파행 운영으로 인한 민생 피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성남시 의회는 새누리당 시의원들의 본회의 불참에 따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성남시는 법률상 예산 집행이 제한되는 준예산 체제로 시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중앙일보 1월 2일자 16면]

 준예산 체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이다. 저소득층의 생계 수단인 공공근로사업이 무기한 보류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성남시의 공공근로사업에는 893명이 그 대상자로 선정돼 2일부터 출근할 예정이었다. 대부분 일정한 소득이 없고 62세 이상 고령자가 40%를 넘는다. 이들은 환경정비, 무료 경로식당 급식·조리, 대학생 지방행정체험(인턴), 보건소 내 재활·물리치료 보조, 거동 불편자 방문 간병 등의 일을 하고 월 41만~73만원을 받는다.

 방학 동안 학비를 스스로 마련하려던 가천대 2학년 김예림(가명·20)씨의 꿈도 깨졌다. 대학생 인턴 활동 등 지방행정체험사업 예산 집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쟁률이 높았던 행정인턴에 선발돼 기쁜 마음으로 첫 출근을 기다렸는데 너무 허탈하다”며 “시민을 위해야 할 시의회가 오히려 서민들에게 절망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단체가 운영하는 노숙인 무료급식소 지원도 중단됐다. 사회단체 보조금 141억여원도 준예산 체제에서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광복회, 각종 참전전우회 등 보훈대상자에게 주는 보훈명예수당 35억여원도 발이 묶였다. 성남시는 올해 예산 2조1000여억원 중 당분간 집행할 수 없는 예산이 약 4000억~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와 시의회는 파행의 책임을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새누리당 측은 “의회 파행의 책임은 적자가 날 것이 뻔한 도시공사 설립을 고집한 이재명 시장과 민주당 측에 있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본회의를 보이콧한 새누리당에 책임을 돌렸다. 새누리당은 34석 가운데 18석을 차지한 다수당이지만, 민주당 출신인 이 시장의 공약사업인 도시공사 설립조례안이 소속 의원 2명의 이탈표로 상임위를 통과하자 본회의를 보이콧했다.

유길용 기자

◆ 시의회 파행으로 발 묶인 주요 민생 예산

- 공공근로사업비(연인원 6만6424명) 57억원

- 보훈명예수당 (7500여 명) 35억원

- 사회단체 보조금(79개 단체) 14억원

- 운수업계 보조금 410억원

- 공동주택 보조금 42억원

- 무상급식 지원금 254억원

- 공영주차장 건설비 120억원

- 민간행사·경상보조금 110억원

[자료: 성남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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