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명문대 출신 실력 실망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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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정신과 투지를 길러야 합니다."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베인&컴퍼니의 이성용(43·사진) 한국지사 대표. 한국의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을 청하자 그는"지금 당장 부모님 품을 떠나 독립하라"는 고언(苦言)을 던진다. 그가 보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역시나 그가 보는 현재의 한국사회 한국기업과 흡사하다. '청년 실업'으로 상징되는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지향해갈 목표를 잃어버렸으며, 위험을 감수하고 변화할 용기도 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언은 이어진다.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서 가급적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거기서 돈의 가치를 배우고 직업의식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도 단순히 열심히 하기보다는 보다 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지세요. 그리고 지금 당장 잘 나가는 산업보다는 자신이 졸업할 무렵 어떤 산업이 잘 나갈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대표는 지난해'한국을 버려라'라는 책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한국과 한국기업이 저평가받는 현상, 이른바'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원인을 특유의'쓴소리'로 진단해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후속편인'한국을 찾아라'(청림출판)을 냈다.'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극복을 위한 일종의'처방전'이다. 두 권의 책은 20년 가까이 전세계 기업들을 분석해 온 베테랑 컨설턴트가 쓴'한국 주식회사'에 대한 컨설팅 보고서인 셈이다.

'한국을 찾아라'에는 특히'한국의 미래'인 젊은 세대들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가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해마다 100여명 가량,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의 입사 희망자들을 직접 면접해왔다. 컨설턴트가 인기 직종인 만큼 지원자들의 대부분이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들의 실력에 대해"솔직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공부와 담을 쌓은 것 같다. 대학생활 4년 동안 힘든 일이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며 그 결과 사회생활을 할 만큼 충분히 성숙되지도 않았다. 주관적 견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동료들 중 상당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이력서를 보면 모두 형식도 같고, 내용도 같으며 심지어 문구까지 똑같아 솔직히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라는 것. 이때문에 그는"오히려 성공에 대한 집념과 투지가 있는 지방 대학 출신들에게 더 신뢰가 간다"고 말한다.

다양한 경험과 투지의 부족은 컨설팅 등 전문 직종에서 특히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그는 한국의 인재들에 대해 "전략적이고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개인으로서는 우수한데 조직적으로 일하는 데 서투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가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똑똑한 개인과 무능한 집단', 이른바 'ISCS'(Individually Smart, Collectively Stupid) 현상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대안으로 엄격한'졸업 정원제'의 실시를 제안하고 있다. 대학의 졸업정원을 현 수준의 50%로 묶어 학생은 물론 교수들의 긴장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과 공공기관에서의 인턴십을 필수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학창시절 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사실 그가 두 권의 책에서 묘사한 '한국 주식회사'현실은 한국의 대학생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가혹한 편이다."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거의 상실한", 기업으로 따지면 사실상 '퇴출 위기'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50가지 '실행 항목'(action item)을 제안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부문을 아우르는 이 제안들은 그의 현실 진단만큼이나 급진적이고 구체적이다. 대학 졸업정원제 실시를 포함해 화폐단위 절하,10만원권 도입, 영어 공용화, 스크린쿼터 폐지,공무원 인센티브제 전면 도입 등 현실적으로 하나만 실행하려 해도 큰 사회적 논란이 일만한 것들이다. 여기에 '대통령과 국회의 성적을 매겨 1년 내내 걸어두자', '관광산업 진흥은 에버랜드팀에 맡기자', '빈곤층을 위한 사모펀드를 만들자'등 다소 이색적인 아이디어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일들을"마음만 먹으면 당장 월요일 아침부터 실행할 수 있는 일", 컨설팅 업계 용어로 '먼데이 모닝 액션 아이템'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문화적 차이는 물론'변화의 절박성'에 대한 인식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표현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에게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견한 희망적인 현상은 없느냐고 물었다.

"한국 문화가 아시아 지역을 장악해가고 있는'한류 현상'은 긍정적인 신호다. 또 삼성 포스코 등 몇몇 기업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앞으로 이런 기업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미 육군사관학교 우주공학과, 하버드대 MBA과정 등을 거쳐 현재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 겸 글로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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