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삼 그 의혹|현지 수사반 뜻밖의 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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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억대에 달하는 부여 고려인삼 전매지청의 홍삼 부정유출 사건은 검찰의 현지 수사로 곪 집을 도려낼 단계에 이르렀으나 예기치 못했던 검찰 고위층의 철수 지시로 수사가 중단되어 쌓여온 부정의 규모가 검은 「베일」에 가려지게 될 것 같다.
홍삼 부정유출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박찬종 검사는 두 차례에 걸친 현지 수사에서 작년 한햇 동안만도 1억원에 달하는 홍삼(3천 5백여근)이 없어졌다는 확증을 잡고 지난 7년 동안 쌓여온 홍삼 부정유출액수를 캐다가 그치고 3명의 수사반원과 함께 부정의 온상지를 떠났다.
박 검사는 전매청의 국고 수입과 정부와의 관계, 범죄지가 부여라는 특수사정 등으로 수상에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지만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수사를 중단하고 현지를 철수하라는 고위층의 긴급 지시는 생각 밖의 일이었다.
검찰은 3일 동안의 제2단계 현지수사에서 작년 한햇 동안의 부정유출액수(1억원)로 미루어 보아 지난 7년 동안 쌓여온 국고손실은 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61년부터 본격적인 해외수출을 하기 시작한 홍삼 전매사업은 제조실적이 해마다 늘어났지만 부정의 규모는 철도청 부정사건과 맞서는 것으로 알려 졌다.
해외수출용으로만 만들어지는 홍삼이 감쪽같이 없어져도 지금까지 부정이 은폐되어 온 것은 장부상의 제조실적과 재고량이 일치된다는 요술 때문이었다.
부정을 숨기는 비법이란 간단하다. 전매청 본 청에서 제조량을 결정한 그해의 홍삼을 만들기 위해 업자로부터 원료인 수삼을 사 들일 때 일정량을 더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수삼을 사들이는 배상금도 본 청에서 일정액의 예산이 내려오지만 정부에 수삼을 팔게 된 업자가 수납량의 7∼10%에 해당하는 수삼을 희사시키는 편리한 방법이 있다. 업자들은 이익의 일부를 뺏기게 되지만 다음해의 더 많은 수삼수납을 위해 참아 넘기는 것이다.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부여 고려 인삼공장에서 많은 양의 홍삼이 시중에 흘러 나와 「홍콩」「사이공」등 동남아 시장에 및 수출, 국내상품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정부의 외화획득이 부진해진다는 정보를 입수한 박 검사는 지난 10일 홍삼 부정유출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
경찰에서 검거한 3백만원 짜리 관제 홍삼 밀수출 사건이 전매청으로 이첩된 후 그것이 1백50만원 짜리 사제 홍삼으로 돌변, 구속영장이 청구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홍삼 제조방법을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는 관제와 사제를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제 홍삼 밀제조 사건으로 허위보고를 한 것이다. 검찰은 전매청에서 사제 홍삼이라고 허위 보고를 한 것은 지금까지 부정 유출된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 전면 수사를 벌였다.
1차 현지수사에서 『부여 전매지청 직원과 관계 있는 중간 업자로부터 관제 홍삼을 사왔었다』는 천복임(30·부여군 규암면 슈암리=구속 중)씨의 자백을 받은 박 검사는 고려 인삼전매지청 직원이 관련된 거액의 홍삼유출 사건과 중간업자를 통한 밀수출 「루트」를 적발, 이봉성 서울 지점장에 사건규모를 보고하자 홍삼 부정유출 사건의 뿌리를 뽑으라는 지시를 받고 2차 현지수사에 나섰다. 검차에 연금 되어 철야 신문을 받고도 『업자로부터 수납한 수삼은 1%의 자연 손실량도 없이 모두 홍삼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부정유출이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해온 노수남 전지청장과 장병무 제조과장은 증거를 대는 박 검사의 추궁에 거짓 장부를 꾸며 왔다고 자백하기 시작했다. 홍삼 제조과정에서 자연 손실량이 전혀 없다는 상식이하의 주장과 필요한 수량보다 2할을 넘는 홍삼 포장상자(나무궤짝과 양철상자)가 쓰여졌다는 확증에 꼬리를 잡힌 이들은 허위공문서 작성의 경위를 자백하기 시작했으나 사건이 확대될 즈음 내려진 철수 지시로 관련 공무원을 불구속 기소하게 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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