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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타결 본 일 어선의 석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 14일 제주도 서쪽 한국 전관수역에서 어로 작업 중 나포된 일본어선 제53해양환(1백「톤」·어부 4명)은 2주 넘어 걸친 한·일간의 논쟁과 정치적 흥정 끝에 석방키로 방침이 세워진 것 같다. 국내법에 따라 처리한다던 정부 방침이 선적 일 중의원 전의장의 방한을 전후하여 석방 결정으로 급선회한 것은 청구권자금 도입·어선도입 문제 등 앞으로의 한·일 간의 협의사항을 우호적으로 다루려는 주장이 두 나라 외교통로 사이에서 우세하다.
해양환의 나포가 알려 졌을 때 일본 측을 처음에는 『공동규제 수역에서 어로작업 중이던 일본 어선을 한국경비정이 불법 나포했다』고 주장하더니 다음에는 전관수역 내에서 어로작업을 했음을 시인하면서도 나포된 지점이 공동규제 수역이니 한국 측에 「추적권」이 없지 않느냐고 딴전을 피우면서 석방을 요구했다.
①『나포지점이 북위 35도 20분·동경 1백 25도 50분으로 제주도 서방 30「킬로」해상이라는 주장, 그리고 ②「기국주의」원칙에 따라 체포된 어부의 재판 관할권은 일본 측에 있다는 두 가지 주장을 내세워 「프레스·캠페인」마저 벌였다.
이와 같은 일본 측의 처사는 한국 측의 호의를 짓밟고 설령 석방시켜 주려 해도 그럴 명분을 줄인 결과를 자초했다. 그래서 정부는 일어선의 어로작업 위치뿐만 아니라 나포된 위치가 북위 33도 17분·동경 1백25도 56분으로 우리 전관 수역 내(제주도 차귀도 서쪽 15마일 해상)라고 못을 박고 어업협정 제1조(연안국의 배타적인 관할권)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나아가서 국내법인 어업자원 보호법 제2조(관할 수역 내에서 어로를 하려는 자는 주무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및 제3조(어구의 몰수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금고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었다. 한국 측의 강경론은 『일본어선 두 척(제52·53 해양환)이 우리 전관수역 내에서 어로 작업 중 한국 경비정에 쫓겨 달아나다가 제53해양환만이 잡힌 것을 보아도 일 어선이 명백한 협정 위반을 시인한 것이 아니냐』는 뚜렷한 근거 위에 서 있으므로 명분상으로도 떳떳한 것이었다.
한국정부 당국자들이 견해는 『그들이 어부 석방을 위한 지나친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한국정부로서도 앞으로의 양국간의 우호를 위해 별 다툼 없이 석방했을지도 모를 일』라는 것이다.
사태가 악화하자 일본 정부는 청구권자금 제1차 연도 사용 계획을 위한 한·일 합동 위원회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어선도입 문제를 지연시키는 등 나포된 어선과 어부 송환을 이들 문제와 결부시켜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아 한국 측에 압력을 가하면서 주한 일본대사로 하여금 한국정부와 정치적 절충을 꾀하게 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일본에서 한·일 협정비준 통과의 막후 공로자라 할 수 있는 「후나다」 전 일본중의원 의장이 지난 23일 김종필 공화당의장의 초청으로 내한, 박 대통령·이 외무장관을 만나 나포어선의 석방을 간청했다.
이에 한국 정부 고위당국은 이 사건이 한·일 어업협정 발효 후 첫 「케이스」라는 점도 있지만 다분히 「코리아·로비」로 정평 있는 선전씨에 대한 정치적 선물로서 나포어선과 어부를 석방키로 합의를 본 것이라고 외교관측통들은 해석하고 있다. 해양환 문제는 이렇게 하여 정치적인 선에서 일단락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석방의 원칙은 정해졌으나 앞으로 정부가 이들 어부들을 일단 기소하여 선고유예 정도로 석방할 것인지 벌금형을 과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기소중지를 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석방흥정」이 일본 측 「페이스」에서 시종 되었다는 개운찮은 뒷맛과 함께 「정치적 흥정」의 선례를 남겼다는 데서 재협정 중 가장 말썽 많고 허점 투성이라는 어업 협정의 장차 운영에 계속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데에 앞으로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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