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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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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 사랑하는 사람의 재앙됨이여!-오장환.

내 나라의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빚을 수 있는 시인의 탄생은 그 시인만의 것이 아니요 역사와 문화와 더불어 겨레의 축복인 것이다. 1991년 10월 24일 저녁 서울 동숭 아트센터에서 '미당 서정주 화사집 50년 기념시제'가 열렸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자화상'의 싯귀를 내건 이 시의 축제는 반세기 전 23편의 시로 첫 시집 '화사집'을 내 우리 시문학사에 새 장을 연 것을 기념하는 잔치로 신문학 이후 어느 시인의 어느 시집도 받아보지 못한, 문학동네에서는 처음 있는 아주 뜻깊은 행사였다.

큰 시인의 업적을 기리고 받드는 일은 마땅히 문학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야 하는 법인데 못난 우리 제자들이 정신 못차리고 허둥대고 있는 사이 그해 6월 3일자 한국일보에 김성우의 칼럼 '화사집 50년'이 나왔다. 문단이 눈을 감고 있는데 언론인이 나서서 그 뜻을 기리자는 제의를 하고, 이어서 기념시제마저도 김성우가 나서서 큰 무대에 올린 것이다.

시를 배웠거나 추천받았거나 학연이나 혈연 어느 것도 걸릴 것이 없는 문단 밖의 인사가 생각해주는 것도 고마운 터에 적지 않은 경비가 드는 행사를 맡아서 하는 것이 우리 제자들이나 시단은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여기서 이제는 반세기가 아닌 6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미당은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돼 등단하자마자 곧 그의 놀라운 시재로 시단의 박수 갈채를 받기 시작한다. 그 해 미당은 김동리.오장환.함형수.이성범.이용희.김상원 등과 동인을 결성, '시인부락'을 창간하였는데 발행 겸 편집을 맡아서 2집까지 낸다.

동인 중에 오장환은 특히 미당의 시에 홀딱 반해서 갓 신인인 데다 시가 몇 편 되지 않는데도 그의 시집을 자기가 경영하는 남만서고(南蠻書庫)에서 내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있던 차에 동인인 남대문약국 주인 김상원이 5백원을 내놓아 41년 2월 10일 1백부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제1번에서 15번까지는 저자 기증본, 16번에서 50번까지는 특제본, 51번에서 90번까지는 병제본, 91번에서 100번까지는 발행자 기증본이었다. 특제본 35권의 표지는 유화용 캔버스로, 등때기는 비단에 '花蛇集' 세 글자만 붉은 실로 수를 놓고 본문은 전주 태지를 여러 겹 붙여 다듬이질 했으니 책의 호사를 있는 대로 부렸다.

특제본은 5원, 병제본은 3원인데 약주 한 사발에 안주 하나 곁들여 5전이었다니 특제본 한 권 팔아서 선술집 돌아다니며 1백잔의 술을 마셨다고 한다.

서문이나 저자의 후기도 없고 오장환이 "그여코 내 손으로 화사집을 내게 되었다. 내가 붓을 든 이후로 지금에 이르도록 가장 두려워하고 끄리든 이 시편을 다시 내 손으로 모아 한 권 시집으로 모아 세상에 전하련다.

아, 사랑하는 사람의 재앙됨이여!"하고 붓을 놓고 만 것을 제작비를 댄 김상원이 받아서 "정주가 '시인부락'을 통하야 세상에 그 찬란한 비늘을 번득인지 어느듯 5~6년, 어찌 생각하면 이 책을 묶음이 늦은 것도 같으나 역(亦), 끝없이 아름다운 그의 시를 위하야는 그대로 그 진한 풀밭에 그윽한 향취와 맑은 이슬과 함께 스러지게 하는 것이 오히려 고결하였을는지 모른다"고 발문을 쓴다.

미당도 못가지고 있는 특제본을 화사집 50년을 맞아 복간했고 축제무대에는 김남조.김윤성.이형기.박재삼 등 10여명의 시인과 김동원.백성희.장민호.손숙.윤정희 등 원로 연극인.영화인이 나섰다. 가수 송창식은 '푸르른 날'을 불렀다. 나는 '자화상''수대동시'같은 18번을 다 뺏기고 '밀어'를 낭송했다.

구랍 스무사흘은 미당 2주기 제삿날, 화사집 50년을 맡았던 김성우 명예시인은 혜화동 재능교육빌딩에서 또 한번 '미당시제'를 올렸다. '아, 사랑하는 사람의 재앙됨이여!'오장환의 저 찬란한 탄식을 오늘은 내가 씹으며 울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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