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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마포대교에서 복수초를 생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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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눈 속에서 피어난다고 설연화, 얼음을 뚫고 피어나기에 얼음새꽃이라 불리는 꽃. 꽁꽁 언 겨울 숲 속에서 가장 먼저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福壽草)다. 복수초는 1월 혹한을 뚫고 땅 위로 올라와 눕고 서기를 반복한다. 그러곤 스스로 체열을 발산해 주변의 눈과 얼음을 녹이며 꽃을 피운다. 영하의 기온에도 복수초 주변은 3~4도가 높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열을 내고, 그 따스한 기운으로 잔인한 겨울을 이겨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키 작은 복수초는 숲 속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자란다. 나뭇잎이 돋아나 햇볕을 가리기 전에 서둘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민들레를 닮은 노란 꽃은 하루 종일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접시 안테나 모양의 꽃잎은 오목거울처럼 햇볕을 최대한 반사해 암술 쪽으로 열을 모은다. 수정을 위해 따뜻한 암술 주변으로 곤충들을 모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신비한 생명력을 간직한 꽃이다.

 새해 첫날인데도 기쁨을 느끼기 어려운 분위기다. 대선 이후 열흘 만에 5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끊었다. “또 5년을 …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2030세대는 “차라리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고 절망한다. 정작 ‘콘서트’와 ‘힐링’으로 재미 보던 인사들은 외국으로 튀거나 입을 다문다. 가장 치유가 절실할 때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박근혜 당선인이 믿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밀봉 봉투에서 꺼내든 인수위원회 인사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대통합이 뭐 이래?”라고 수군거린다. 차라리 깔끔하게 떠난 안대희·김무성·김성주 위원장의 뒷모습에서 잔잔한 여운을 찾는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한 대학총장이 경제위기 한복판에서 이런 글을 썼다. “아들아, 이런 말을 하는 게 슬프지만 더 이상 이 나라는 네가 자부심을 가질 나라가 아니다… 조국을 떠나라. 이제 이곳은 네가 꿈을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다. 아들아 조국을 떠나라. 너는 다르게 살 권리가 있다.” 이제 이 땅의 아비들도 데칼코마니 같은 절망의 편지를 2030세대에게 띄워야 하는 걸까.

 그제 밤 일부러 마포대교를 찾았다. 사람이 걸어가면 LED등이 켜지고 글자판으로 말을 걸어온다. “밥은 먹었어?” “혼자 왔어요?” “무슨 고민 있어?”…. 이런 훈훈한 글귀도 나타난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다리 중간에는 친구끼리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한번만 더’ 동상이 있다. 여의도 증권가가 가까운 데다 대중교통 접근이 쉬운 마포대교는 자살의 다리였다. 우중충한 회색빛 콘크리트 덩어리가 힐링의 명소로 바뀐 것이다.

 자살하려던 고교 2년생은 마음을 돌린 뒤 인터넷에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고맙습니다”는 글을 올렸다. 자살을 고민하는 중2생의 하소연에는 “마포대교에 한번 가보라”는 충고와 함께 유튜브 동영상이 링크돼 있다. 생명을 살리는 성지순례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어렵고 지쳐서 거기에 힘들게 서게 된 누군가에게 마포대교는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걸어준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작은 따뜻함을 만난다. 기술이란 게 원래 이렇게 훈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데 들어가는 세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대선이 끝났는데도 “저희 마음속엔 여전히 문재인님이 18대 대통령이십니다”는 48%의 열패감은 불편하다. “돈도 없는 것들이 이민 드립이나 치고…”라는 51.6%의 호통도 듣기 거북하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서는 자살 시도자에게 “한번만 더 생각해 보게”라는 잘못 세워진 글자판처럼, 다시 한번 벼랑으로 떠미는 야만과 무엇이 다른가.

 새해에는 서로 위로하고 스스로를 가다듬었으면 한다. 상대방이 나쁜 편이라는 손가락질부터 거두자. 차가운 마포대교를 걸으며 어느 깊은 산, 눈밭 속의 복수초를 떠올렸다. 복수초의 눈물겨운 안간힘과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글귀가 겹쳐졌다. 미국 작가인 켄 키지는 “사과 속에 든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에 든 사과는 셀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 희망은 거창한 대선공약보다 그렇게 작은 씨앗 속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