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인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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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 용산역에서 거행되는 건널목 간수 박씨의 장례식에 즈음해서 건널목 인심의 두 가지 면을 생각해 본다. 박씨가 처음으로 보여준 것은 아니고 전에도 여러번 나타난 것이지만, 건널목 인심은 무척 착하다. 거룩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참변은 건널목 인심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어 슬프다. 그것은 건널목 인심이 야속할 수 있고 비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상이용사이며 이제, 한창 일할 나이의 장년 간수, 젊은 아내와 딸들을 가진 착실한 가장이었다. 둘째 딸을 얻은 것이 건널목에서 숨지기 바로 나흘 전이었다니 더욱 비통하다. 건널목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젠 깨어진 독. 생면부지의 한 여인의 목숨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자,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그 여인을 철로 밖으로 밀어내고, 스스로는 기관차에 치여 참사하고 만 박씨의 죽음을 두고, 생명의 귀함이며, 무한한 인간애이며를 장황하게 풀이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백만어의 찬사나 추도사나 기념비보다, 박씨의 죽음 자체가 살아서 그의 죽음을 전해들은 우리 가슴을 더욱 애절하게 더욱 피맺히게 울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씨가 구해준 그 여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 차에 치여 날아가는 것을 보고 가졌던 보따리를 내팽개치고 달아나 버린 그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신의 불찰로 해서 한 사람이 순식간에 참화를 입는 광경을 보고 당황하고 미련해서 당장 어찌할 바를 몰랐다면, 건널목에 주저앉아서 땅을 치고 통곡이라도 했어야 한다. 자기가 잘못해서 빚어진 엄청나고 처참한 결과에 대한 문책이나 원망을 두려워 할 정도의 마음의 안정을 가졌었다면, 우선 인근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숨져 가는 은인의 간호를 부탁해 놓고, 피신했어야 한다. 박씨가 보인 건널목 인심은 너무도 거룩하고, 그가 구해 준 여인의 건널목 인심은 너무도 야속하고 비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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