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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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역사 추리물 소설이 일본 독서계를 석권하고 있다. 이 「붐」을 타고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바로 「송본청장」란 작가다. 소설이라기보다는 공장 상품 같은 「송본」사회제품의 그 소설을 보면 그 「플롯」이 기계의 틀처럼 공식화되어 있다.
즉 역사적 사건을 모두 뒤집어서 번복해놓는 수법 「해는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는 식의 역설법이다. 한국에 관계된 소재만을 보아도 『6·25동란은 한국 측이 먼저 도발한 것이다』 『임화는 공산당원이 아니라, 실은 미국의 「스파이」였다』는 식이다.
딱한 것은 「센세이셔널리즘」을 좋아하는 일본의 그 얄팍한 지성이다. 신기하고 비뚤어진 것을 좋아하는 그들의 설익은 지성은 송본식 추리,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기」에 넘어간 것이다. 「송본」가 불란서나 독일쯤 태어났더라면 인기작가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정도에서 생활해갔을 일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는 송본의 아류가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등전행남」이란 자의 출현이 걸작이다. 그는 일본의 「문예춘추」4월 호에 『이등박문의 암살범은 안중근 의사가 아니라 진범이 따로 있다』는 수기를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그의 주장을 보면 이등이 맞은 총탄 3발은 위에서 아래로 뚫려있었고 총탄도 권총탄환이 아니라 기병총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등과 동행했던 「무로다」가 안중근 의사가 진범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일본정부는 사건처리를 간단히 하기 위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수기를 믿기보다는 고래가 물에서 익사해 죽었다거나 「알래스카」에서 야자의 밀림을 보았다거나, 쥐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말을 믿는 편이 좋을 것이다. 첫째 안중근 의사는 15세부터 총을 다룬 「총의 명수」였다는 점, 그리고 당시 6연발 권총을 모두 쏘아, 이등에게 3발, 그리고 키 작은 왜놈만을 골라 「모리」비서관을 비롯한 두 사람을 쏘았다는 점, 여유 만만한 저격으로 6발에서 1발도 허탄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등전의 수기를 믿는다면 안 의사는 공포만 쏘러 「하르빈」역에 갔단 말인가? 더구나 권총사격거리 내에서 안 의사는 저격을 했기 때문에 일본헌병에 곧 체포된 것이 아닌가. 이등박문의 죽음은 옛날 일이다. 딱한 것은 등전의 수기를 믿는 오늘의 「일본지성의 그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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