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20대女, 남편이 보낸 생활비를…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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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전업주부 이현경(29·서울 오금동)씨는 최근 전업주부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우대 통장에 가입했다. 별도의 직장을 갖지 않더라도 매달 남편이 통장으로 생활비를 보내주면 직장인 급여통장처럼 각종 면제·할인 혜택을 주는 통장이다. 이씨는 “금융상품의 혜택이 직장인에게만 주어지다 보니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는 마땅히 가입할 만한 금융상품이 없었다”며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각종 할인 쿠폰도 제공한다고 하니 앞으로 더 꼼꼼히 생활비를 관리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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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이 전업주부 고객 잡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사실 전업주부는 씀씀이가 큰 미혼여성과 공격적 투자를 하는 직장여성에 밀려 금융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계층이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는 보수적 투자성향을 가진 전업주부가 가정 내 투자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이들을 위한 맞춤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이 최근 내놓은 ‘아내사랑통장’이 대표적이다. 이 상품은 김난도 교수의 저서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된 상품이다.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주고 전업주부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주부에게도 급여통장이 있어야 한다”는 김 교수의 아이디어를 예금 상품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 통장은 남편이 아내에게 매달 일정금액을 자동이체 해주면 직장인 급여통장처럼 현금자동입출금기 또는 타행이체 거래 시 수수료를 면제받는다. 또 환전 시 환율을 우대해주고 이마트몰·아모레퍼시픽몰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도 분기마다 1장씩 제공한다. 이 외에도 매달 입출내역 등을 정리해주는 가계부 기능을 제공한다.

 신한은행도 내년 초 주부들을 위해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가정에서 지출 부담이 가장 큰 교육비 등을 할인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 출시를 검토중이다. 기존 미혼여성 우대상품을 선보인 하나은행·우리은행도 전업주부 전용통장 개발을 준비 중이다. 이 밖에 주요 증권·카드사에서도 다양한 오페라·메이크업·다도(茶道) 강의를 열며 주부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처럼 금융권에서 주부 고객 잡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전업주부의 위상이 예전보다 높아진 데다 남성 고객에 비해 충성도가 높다는 판단에서다. 일선 은행 창구에서는 “전업주부의 손에서 지갑이 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여성 고객 전용 사이트인 신한은행 ‘민트레이디클럽’ 전담 직원 3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을 찾는 여성고객의 44%는 전업주부였다. 전업주부 10명 중 여섯 명(61%)은 본인 거래는 물론 남편·자녀의 금융거래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제대로 된 전업주부 한 명만 잡으면 가족 모두를 거래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는 셈이다.

 은행권에서는 전업주부 고객 확보를 통해 ▶가족의 연계거래를 유치하고 ▶이들의 구매력을 활용한 다양한 제휴 이벤트를 벌일 수 있으며 ▶자녀 등 잠재고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위연상 신한은행 전략시장팀 과장은 “가정 내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업주부의 경제적 파워도 세지고 있다”며 “남편 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투자에는 보수적 성향을 띠는데, 그러다 보니 은행 상품 투자 비중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특정 대상을 집중 공략하는 ‘타깃(target) 마케팅’ 성격도 있다. 사실 전업주부는 유통 쪽에선 구매력 있는 고객층이지만 금융권에선 지금까지 별다른 맞춤 상품이 없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여성 고객을 세분화해 전업주부에 특화된 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국민은행 시진우 수신부 팀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단순히 금리 우대를 해주는 상품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다”며 “여성 고객을 전업주부나 워킹맘 등으로 세분화해 이들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맞춤 상품을 내놓아야 여성 고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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