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근소세 경감' 난감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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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부가 근로소득세 경감 방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 공약인 '근로소득공제 확대'가 생각 만큼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盧당선자는 저소득층의 근소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연급여 5백만~1천5백만원 구간에 대한 근로소득 공제를 45%에서 50%로, 1천5백만~3천만원에 대해서는 15%에서 20%로 늘리겠다고 밝혔었다. 이렇게 되면 연말정산 때 연급여에서 최고 1백25만원의 소득공제를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는 소득을 일률적으로 깎아주는 근로소득 공제를 확대할 경우 면세점(근로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면세자가 늘어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소득이 적으면 적은 대로 조금씩이라도 내고, 많으면 많이 내도록 한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2001년 말 현재 근소세 면세자는 전체 근로자의 45%로 선진국(영국.일본 20%, 미국.캐나다 17%)의 배를 넘는다. 때문에 재경부는 매년 늘려왔던 근로소득 공제를 지난해 세법 개정 때는 동결하는 등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 올해 면세자 비율이 42%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재경부로선 이런 상황에서 다시 면세자를 늘리는 세법 개정을 추진하려니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또 근로소득 공제를 확대하면 저소득층만 혜택을 보는 게 아니라 고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근소세가 깎여 세수(稅收)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정부의 말 못할 고민이다. 1999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씩 근소세를 깎아주다 보니 지난해엔 근소세가 전년보다 2천억원이 덜 걷혔다. 매년 근로자가 늘고, 임금이 오르는데도 근소세는 줄어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盧당선자의 취지는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뜻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며, 공약인 근로소득 공제 확대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盧당선자 진영에서도 면세자를 늘리는 식의 개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조세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 근소세를 감면하다 보니 근로자 중 근소세를 내는 사람이 절반 밖에 안되는 실정"이라며 "따라서 이런 정책보다는 자영업자의 음성.불로소득을 파악하고, 재산세.상속세 등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재경부는 근로소득공제 확대 외에 의료비.교육비.주택자금 등 실제 경비에 대한 특별공제를 늘리는 방안을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최명근 경희대 교수는 "의료비 등 특별공제를 확대하는 것은 면세자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지출이 많은 근로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합리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재경부는 또 저소득층 근로자를 대상으로 세금을 환급해주는 근로소득세액공제(EITC)정책도 연구 중이다. 이는 미국에서 시행해 '노동 빈민'을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본 제도로 인수위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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