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살해하는 새의 비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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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31면

구글 검색창에 ‘New Year’s resolution’을 치면 200만 건 이상의 ‘소망’이 나온다. 가장 많이 나오는 항목이 ‘체중 감량’ ‘대출상환’ ’저축’ 등이다. 그러나 이 중 새해 2월이 되기 전에 30%가 포기되고, 6개월 이상 지속하는 것은 불과 20%다. 지난 정권 초기 소통을 위해 기대 속에 만들어졌던 것이 ‘사회통합수석실’이요, ‘국민소통비서관’이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소통’이었다.

소통 없이는 어떤 복지나 정치혁신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소통은 잘 돼도 표시가 안 나지만 안 되면 그런 재앙도 없다.

1000여 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사회주의 방식으로 빈곤과 정치적 부패 문제를 개혁하려 했던 이가 바로 왕안석이었다. 그는 ‘정부는 백성의 모든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고, ‘부자의 착취를 막기 위해서는 모든 산업기반을 정부가 장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고 농번기에 동원되는 부역을 일절 중지시켰다. 고리대금에서 서민을 구하고자 저리융자를 실시했고, 생업에 몰두할 수 있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유통상인들의 농간을 막고자 가격전담 관리를 두어 규제하고, 유통을 국유화해 국가저장소에 재고를 비축해 시장 가격을 조정했다. 이러한 혁신 시스템이 작동하자 부패한 정치자금들이 움직일 공간 또한 없어졌다. 노인층과 극빈층에 연금도 지급했다. 과거제도조차 손을 보아 암기 위주의 교육을 대대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지금도 중국의 역사서는 왕안석의 개혁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나를 기록하고 있다.

“마을 서당 학생들조차 수사학 책을 던지고 역사와 지리학, 정치, 경제 분야를 공부했다.” 이러한 왕안석의 개혁정치는 결국 실패했다. 왜 실패했을까? 바로 소통의 실패였다. 복지비용은 행정비용 절감이나 부자 증세로 충분하리라고 판단했지만 막상 집행해 보니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세금 부담을 중산층까지 확대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때 중산층을 설득하는 소통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다. 결국 개혁의 절대 지지자였던 중산층이 분노한 반대 세력으로 돌아섰다. 더욱이 왕안석은 개혁 중에 자신의 주변에 얼마나 정직한 관리(공무원)가 적은가를 알고는 좌절하곤 했다. 관리집단이 소통의 병목구간이었던 것이다.

소통은 더욱 어려워졌다. 여러 가지 다른 요인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이러한 소통 부재로 인한 지지계층의 변화가 그의 혁신 기반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소통이란 어려운 일이다. 소통(疏通)의 ‘소(疏)’자 속에 숨어 있는 의미에는 ‘태 속의 태아가 자신을 감싸고 있는 자궁을 박차고 나온다’는 의미로 상당히 여성적이고 생산적인 단어다. 죽을 고통을 동반해야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깊은 뜻이 있다. 소통은 단어 그 자체에 이미 ‘성공의 도약’과 ‘실패의 몰락’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래하는 새들인 명금류에서는 먹이가 부족하면 가장 어린 새끼에게 먼저 죽음이 찾아온다. 형제로부터의 공격이나 굶주림으로 죽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육강식의 자연법칙만 있지 살기 위한 소통은 없다. 그런데 같은 조류인데도 오리나 칠면조 등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일렬로 다니며 스스로 먹이를 구한다. 따라서 형제 간에 먹이 경쟁도 없다. 그렇다 보니 먹이로 인한 ‘형제 살해’도 없다. 왜 이들은 다를까? 전문가들이 오랜 연구 끝에 알아낸 바로는 이런 새들은 알 속에 있을 때부터 서로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을 부화 시기까지도 서로 주고받는다고 한다. 그들의 소통능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소통을 통해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다. 소통의 성공 여부가 다음 세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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